블리자드 사내 성추행 사태 후 1년, 무엇이 달라졌을까

세계적인 게임사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사내 성추행 사태로부터 약 일 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7월 캘리포니아 공정고용주택부(DFEH)는 직장 내 성차별 및 성희롱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액티비전 블리자드에게 피해 보상과 시정 명령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당시 DFEH 측이 LA 고등법원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블리자드의 여성 직원들은 사내에서 성희롱 및 성추행을 빈번하게 겪어왔고 지난 2년 동안 보수, 직무 배정, 승진, 해고 등의 인사 전반에 걸쳐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이었던 건 경영자들이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것이었죠.

해당 이슈가 특히나 논란이 됐던 이유는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던 블리자드의 행보 때문이었습니다. 블리자드는 자사의 게임 속에 다양성 요소를 풍부하게 녹여왔습니다. ‘오버워치’의 캐릭터 절반 이상이 성소수자, 자폐증 환자, 방사능 피폭 피해자, 무성인, 노인 등의 약자들이라는 점이 이를 잘 드러내죠.

여성 인권에 대해 대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어기도 했습니다. 블리자드는 2017년 ‘글로벌 다양성∙포용성 이니셔티브(GDII)’라는 부서를 세우며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을 계속해왔습니다. 직장 내 여성 인권 정책을 강화하고, 성 상품화를 줄이는 문화 조성, 자선 스킨을 제작하고 판매 수익금 전액을 유방암 연구 재단에 기부하기도 하는 등 왕성한 여성 친화적 활동을 하고 있었죠.

그러나 세상은 몰랐습니다. 그 속에 성차별로 고통받는 직원들이 있을 줄은. 사태 이후 블리자드는 연루 직원 37명을 해고하고 40여명을 징계하는 등의 대처에 나섰고 사장인 J 앨런 브랙을 경질하는 것을 물론, 미국 고용평등위원회(EEOC)와의 소송을 통해 맺은 합의안으로 피해보상액 1800만 달러(약 218억원)를 지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블리자드의 캐릭터 ‘맥크리’는 사태 이후 ‘콜 캐시디’로 이름과 세계관이 변경됐다.

이후 블리자드 내외로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일단, 내적으로는 오버워치 캐릭터 ‘맥크리’의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맥크리는 오버워치 출시 당시 최초로 공개된 캐릭터 중 하나로, 블리자드의 개발자 제시 맥크리의 이름을 본떠 만든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블리자드 내 성추문 사건의 일원으로 해당 개발자가 포함됐고, 지난 8월 해고됨과 동시에 캐릭터의 이름과 세계관도 바뀌어야만 했습니다. 아울러 오버워치뿐만 아니라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게임 내에서의 캐릭터와 퀘스트도 삭제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성희롱을 일삼은 직원 중 한명이 게임의 개발자였기 때문이었죠.

블리자드 측은 게임의 세계관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변경한 것뿐이라고 일축했지만 사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발버둥이었다는 것은 회사를 제외하고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블리자드는 매년 개최하는 자체 행사인 블리즈컨의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일정을 모두 취소하며 반성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여론은 냉정했죠. 사태 이후 이용자들은 물론 직원들과 업계 관계자까지 파업 혹은 보이콧에 나섰습니다.

블리자드의 직원들은 지난해 7월 ‘평등을 위한 파업’이라는 명칭으로 파업을 선언했고, PC∙콘솔 게임의 공략 가이드를 출판하는 프리마게임즈는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블리자드 콘텐츠의 보도를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블리자드는 게임 개발에 있어서도 차질이 생겼죠.

그렇게 위기에 봉착한 블리자드, 결국 회사는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MS)에 전원 현금으로 인수하는 조건으로 총 687억 달러(약 82조원)의 금액으로 회사의 지분을 넘겼습니다. 인수는 MS의 회계연도인 2023년 6월 30일 블리자드 주주들의 규제 검토∙승인에 따라 마무리될 전망이며, 15일 국내에서도 기업결합 심사를 접수했습니다.

인수를 두고 외신에서는 MS가 블리자드 내 사내 성차별 문제에 눈을 감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MS는 블리자드의 사내 차별적 문화를 고발하는 보도가 나오자 직원 이메일을 통해 “블리자드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행동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며“블리자드와의 관계를 재평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MS의 인수는 정상적으로 이뤄졌지만 그만큼 사태는 굳건했던 블리자드의 기반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이는 성차별적인 문화를 방관한 결과였죠.

한편, 당시 바비코틱 블리자드 최고 경영자(CEO)는 지난 10월 성명문을 통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연봉을 1억5450만달러(약 1810억원)에서 6만2500달러(약 7000만원)로 삭감하는 안을 발표했고, 다섯 가지의 사안을 약속했습니다.

첫째, 사내 괴롭힘과 관련해 무관용 정책을 시행하겠다. 둘째, 여성 및 논 바이너리(이분법적 성별 구분에서 벗어나는 성별) 직원을 5년 안에 50% 늘리겠다. 셋째, 직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성폭력 및 성차별 피해 사건 관련한 강제 중재를 중단하겠다. 넷째, 동일 임금 제도의 투명성을 증대하겠다. 마지막, 향후 진척 상황을 공유하겠다는 것이 그 골자입니다.

블리자드는 지금까지 약속했던 내용을 이행 중입니다. 블리자드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새로운 직장 내 다양성∙포용성 책임자로 크리스틴 하이즈를 선임했다고 밝혔는데요. 회사 측은 “약속했던 문제해결 사안에 대해 그녀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블리자드에 따르면 크리스틴 책임자는 향후 블리자드 게임의 스토리라인, 캐릭터 개발, 게임 플레이 및 커뮤니티 상호작용에 더 다양하고 포괄적인 관점을 담을 수 있도록 기여할 예정입니다.

또, 사내 퍼블리싱과 사업부의 품질보증(QA) 비정규직 직원 1100명을 오는 7월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정규직 전환과 함께 직원의 최저 시급을 시간당 20달러 이상으로 인상하겠다고도 말했는데요. 블리자드 측은 “우리는 미래에 대한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고, QA 직원들은 블리자드의 개발 능력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라며 “직원들을 인력으로 채용하면 개발 자원이 보강되고 정규직의 25%가 증가할 것”이라고 이유를 전했습니다.

물론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자회사인 레이븐 소프트웨어는 배제했다는 점에서 차별적 조처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FPS 게임 ‘콜 오브 듀티’를 개발한 블리자드 자회사 레이븐 소프트웨어는 지난 12월 자사의 QA 팀 계약직 직원들을 갑작스레 해고한 것에 대한 항의로 파업을 진행하고 노조 결성을 추진했는데요. 블리자드 측이 현재까지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비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블리자드가 풀어가야 할 숙제는 산더미입니다. 블리자드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미국 정부 기관들의 소송과 내부 직원들과의 소송이 아직 진행 중에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공정고용주택국이 제기한 소송 재판은 내년 2월로 예정돼 있고, 블리자드의 직원들은 미국 고용평등위원회와 블리자드가 합의한 기금 규모가 터무니없이 적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블리자드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할 겁니다. 블리자드를 인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필 스펜서 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 CEO는 인수를 발표하며 “창의적인 성공 배경에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게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며 “우리는 모든 팀이 이 약속을 지키도록 할 것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한 블리자드, 그리고 MS의 자회사가 된 블리자드입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블리자드의 달라진 행동과 문화가 IT업계 내 차별문화를 없애는데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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