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중대재해처벌법 제대로 준비하는 게 맞나?

지난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됨에 따라 게임 업계도 이에 대한 준비에 나섰다. 그러나 종사자들은 법 시행과 관련한 회사의 대응이 게임 업계의 본질적 문제인 ‘과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부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법을 위반한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혹은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며 건설∙제조업을 비롯해 IT∙서비스업 등 모든 업종을 적용 대상으로 한다.

산업재해와는 관련이 멀어 보이는 게임 업계가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폭발 사고나 붕괴 사고 뿐만 아니라 과로, 갑질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게임 업계는 근무 강도가 센 걸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7년 과도한 근무 강도로 돌연사한 20대 게임 개발자의 돌연사가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회사가 대처하고 있는 사항이 본질적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분위기다. 산업 안전 측면에서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건 과로 문제인데, 회사가 준비하고 있는 바는 이와는 다른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17일 바이라인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 응한 한 대형 게임사 개발자 A씨는 “현재 회사가 대응하고 있는 것은 방역 혹은 건물 안전 점검 등과 관련해 있다”며 “이는 과로랑은 거리가 먼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처하는 게임사들의 현황

법이 시행됨에 따라 일명 3N이라고 불리는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의 주요 게임사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관련해 전담 조직을 구성하거나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게임 업계 중대재해처벌법 대비 현황

넥슨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에 따라 ‘안전보건조치의무’를 확인하고 안전보건전담조직을 구성한 상황이다. 넥슨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을 통한 구성원 참여를 통해 이를 지속해서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넷마블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관련해 안전보건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안전보건 협의체를 운영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넷마블 관계자는 “안전보건 협의체를 통해 안전 보건에 관한 정보교류∙사고 예방 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합동안전점검을 실시해 건물 내∙외부의 사고위험 요인을 발굴하고 개선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관련 체계를 구축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엔씨 측 관계자는 “전문 기관의 자문을 통해 안전보건 확보 의무 이행에 대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사우 보호와 건강한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넥슨, 넷마블을 제외한 대다수의 게임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관련한 전담 조직을 꾸리는 등의 구체적 단계는 아닌 상황이다. 하지만 게임사들은 법 시행 이전에도 이미 관련 예방 조치나 장치들이 잘 마련된 상황이었다는 주장이다. 상시 근로자 100명 이상 규모의 회사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준수하는 안전・보건에 관한 구조와 시스템을 마련하고 이를 이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의 개발자들은…

사측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앞으로의 노동환경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대재해에 대한 대비가 개발자들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과로 등이 아닌 재해와 안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또 다른 게임 회사 개발자 B씨에 따르면 “(과로 등의 문제에 대해) 그 전보다는 준비가 돼 있는 상태긴 하지만, 구조적으로 감시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업무가 늘어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늘어남에 따라 지정된 근무 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일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개발자들은 코로나19 이후 만들어진 재택근무가 또 다른 형태의 크런치 모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래 게임 업계에서 통용되는 크런치 모드는 서버가 터지는 등의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혹은 신작 출시를 앞둔 상황 등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하면서 업무시간 외에 부탁받는 업무의 양이 늘었다고 B 씨는 말했다. 그는 “팬데믹으로 바뀐 재택 근무 형태에서 개발자들은 매 시간이 업무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처럼 느끼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다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환경이 달라지면서 규칙 적용이 애매한 회색지대가 생겨난 셈이라서다. 앞서 문제를 제기한 개발자 B씨는 “이전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변칙적인 상황들이 생겨나고 있다. 당사자인 우리도 뭐가 잘못 됐는지 가늠이 안 선다”고 말했다.

게임사의 노동조합 측도 상황을 살피고는 있으나 아직 별다른 조처를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관련 판례가 없는 상황일뿐더러 문제라고 보기 애매모호한 영역도 있다는 것이다.

대신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문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을 들었다. 게임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C 씨는 “노조가 없는 회사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는 게임 업계의 고질적 노동 환경들이 더 관행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게임 업계 중 노조가 있는 회사는 넥슨, 스마일게이트, 엑스엘게임즈, 웹젠 등 총 4곳이다.

애매모호한 중대재해처벌법… 중소게임사들은 아직은 힘들어

게임회사의 특성상 종업원의 안전을 위한 노력에는 과로 방지가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서 더욱 취약한 상태에 놓인 곳은 대형 게임사보다는 중소 규모의 게임사들이다.

게임사와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법에 대한 논의가 잘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 속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작년 11월에 발간한 ‘2021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업계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근무 일수는 5일, 노동시간은 41.3시간, 주 52시간 초과 비율 0.5%를 기록했다. 이전에 비해 주당 평균 노동시간 및 52시간 초과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5인 미만 회사 소속 종사자들의 경우는 다르다. 5인 미만 회사 소속 종사자들 48.3%는 크런치 모드를 경험했고, 그 시기 평균 주 61.4 시간을 근무하는 등 크런치 모드의 경험 비율과 노동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는 5인 미만 소속 게임산업 종사자들에게 게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미만 기업들에는 지금으로부터 3년이 흐른 후 시행될 예정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어느 정도까지가 중대재해이고, 어느 범위의 과실을 사업자 책임으로 물어야 할지에 대한 예시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대형 게임사들이 법 시행과 관련해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핀 후 중소게임사들에도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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