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2022 리뷰] 대기업들의 메타버스 전시 경쟁, 체험해보니

지난 7일(현지시간) 폐막한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2022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것으로 평가된다. CES에 참가해 전시한 전체 기업 2000여곳 가운데 한국 기업은 416곳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이어지는 해외 기업의 전시 불참 소식에도 한국 대기업들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삼성, LG, 롯데, SK, 현대 등 주요 대기업들이 모두 CES에 참가해 대규모 전시공간을 차리고 키노트와 첨단 신제품과 미래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같은 국내 기업들의 전시관에서는 공통점을 엿볼 수 있었다. 최근 가장 핫한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부상한 메타버스를 활용해 전시를 구성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가상현실(VR) 혹은 증강현실(AR) 제품을 직접 판매하지 않음에도 전시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VR, AR 기술을 활용했다.

LG, 롯데, SK, 현대 등 국내 대기업 4사와 캐논의 메타버스 전시부스를 현장에서 살펴봤다. 전시 자체의 재미는 물론, 기업과 제품에 대한 정보 전달력, 전시와 제품의 연관성을 기준으로 평가해본다.

실물 전시 없는 완전 AR 전시한 LG, 결과는 실망

CES2022에서 대부분의 대기업들의 전시부스가 마련된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센트럴홀(Central Hall) 입구에서 가장 먼저 LG 부스가 참관객들을 맞이했다. LG는 올해 CES 부스에 실물 전시품을 단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다. 모든 제품을 AR로 봐야하는 완전 메타버스 전시였다.

현장에서 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AR 기술을 사용한 전시라면 불편함을 극복할 장점을 제시해야 한다. LG는 그 미션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LG의 전시를 즐기려면 우선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해야 한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에서 QR 인증을 해야만 전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전시장 내 모든 전시물은 QR 코드로만 존재했다. 여기서부터가 난관이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린 미국의 인터넷 환경에서는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부터 쉽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기자는 마침 LG 유플러스 해외 로밍 서비스를 사용했는데, 이를 통한 현지 통신사 롱톰에볼루션(LTE) 서비스로는 애플리케이션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전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와이파이(WiFi)도 당시 연결되지 않았다.

LG 측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예상한 듯하다. 전시가 끝난 후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던 중 전시 안내 표지만 아래쪽에 작게 표시된 LG 와이파이 이름을 발견했다. 하지만 LG 이외에도 볼 전시가 2000여개 남아있는 참관객들은 안내 표지판 세부 내용까지 꼼꼼히 확인할 여유가 없다.

LG 전시관은 총 4개 주제(‘History of OLED Experience Zone’, ‘CES 2022 Innovation Award Zone’, ‘LG World Premiere Zone’, ‘Exploration Spot Zone’)로 구성됐다. 첫 번째, 두 번째 전시는 이름에서 분명히 주제를 알 수 있지만 다음 두 개는 달랐다. LG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한 홍보자료를 본 후에야 세 번째는 LG전자의 미래 비전에 대한 영상이었고 네 번째는 나머지 전시품에 대한 AR 전시관임을 알 수 있었다.

4개 주제 중 AR 기술로 구현했을 때 장점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특히 LG의 OLED 기술 역사는 각기 사양이 다른 참관객들의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여주기에 가장 적절치 않은 주제였다.

올해 CES에서 혁신상을 탄 제품도 실물 대신 작은 스크린 속 AR로 불편하게 볼 이유가 없다. LG전자의 미래 비전에 대한 영상 콘텐츠도 부스에 큰 화면을 마련해 직접 틀어주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참관객들이 스스로 해당 영상을 QR 코드로 스캔해서 (필요할 경우 이어폰까지 찾아 끼고) 보기까지 견인 장치도 미비하고, 그 정도로 재미있는 기업 홍보 영상을 만들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밖에 LG 제품을 전시한 마지막 주제관은 앉을 수 있는 의자 높이에 제품 QR 코드를 무작위로 배치했다. LG 전시관 내 대부분 참관객들은 이 의자 위에 앉아있었는데 QR 스캔 후 LG 제품을 보고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LG 전시의 장점을 꼽자면 장소 제약이 없는 만큼 많은 제품과 콘텐츠를 전시했고 대기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반면 수많은 전시 내용 중 제대로 살펴보고 기억에 남은 것은 없었다.

캐논, 자사 제품 활용한 VR 통화 체험으로 기술력 증명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대기업 전시 중 그나마 가장 좋았던 것은 캐논(Canon)의 전시였다. 메타버스 체험을 제공하는 다른 기업의 전시와 같이 캐논 부스 관람을 위해서는 20분 가량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캐논의 대표 제품과 메타버스 체험이 관계가 있음을 명백히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분을 기다린 후 준비된 개인 공간에 들어서면 캐논 제품이 탑재된 메타의 VR 기기 오큘러스를 쓰고 영상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통화 대상은 다른 어딘가에 있는 캐논 직원. 여타 VR 영상통화 서비스와 다른 점은 통화에 참여하는 사람의 전신이 그대로 오큘러스 속 VR 공간에 실시간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연두색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동양인 남성인 캐논 직원이 열대 지방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초대했다. 핑크색 마스크와 베이지색 셔츠, 검은 바지를 입은 기자의 모습이 모두 보인단다. 손을 흔들고 몸을 숙이며 웃었지만 영상의 끊김 없이 자연스레 통화가 진행됐다. 서로의 이름과 출신지를 묻다가 이러한 영상 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캐논의 기술에 대해 얘기하고 통화를 마쳤다.

기자가 체험했던 기술은 캐논이 CES2022 기자회견에서 밝힌 VR 플랫폼 소프트웨어 코코모(Kokomo)의 일부였다. 코코모와 캐논의 카메라가 장착된 VR 헤드셋,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실물 VR 영상 통화가 가능하다. 사람과 함께 주위 풍경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다. 캐논은 이 소프트웨어 판매를 금년 내 시작한다. VR 영상통화 이외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고 호환 카메라도 확장할 예정이다.

VR 콘서트·커머스 제시한 롯데…상용화는 먼 듯

국내 기업 중 가장 적극적인 VR 전시를 한 곳은 롯데였다. 롯데정보통신은 이번 CES에서 자회사 칼리버스(Caliverse) 기술을 사용해 기타 롯데 계열사 서비스를 VR로 구현했다.

롯데 부스는 우선 K팝 음악으로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 자사 VR 콘서트 콘텐츠에 등장하는 아이돌 새러데이의 콘서트 영상을 행사장 스크린에 크게 재생했기 때문. 부스 전시는 콘서트와 커머스 두 가지 분야 VR 체험으로 구성됐다. 콘서트 분야 대기줄이 커머스보다 짧아 먼저 체험해봤다.

VR 헤드셋을 쓰니 콘서트장의 맨 앞 좌석보다 더욱 가깝고 자세하게 새러데이 멤버들을 볼 수 있었다. 너무 가까워서 보는 사람이 괜히 부끄러울 정도. 멤버들은 아바타가 아닌 실제 3D 모습 그대로 가상 공간에서 공연했다.

밀접한 거리 이외 멀리서 콘서트장을 비추는 관점도 종종 등장했으며, 영상과 음향도 때에 맞춰 조정됐다. 응원 야광봉으로 흔들면서 아이돌에게 하트를 전할 수 있는 리모컨은 특별히 쓸모가 없었다. 녹화가 아닌 실시간 VR 콘서트가 구현될 경우에는 ‘최애’와의 소통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15분 정도 기다려 시작한 커머스 체험은 상용화를 위해 개선해야 할 요소들이 더욱 많이 보였다.

‘상품 구매나 결제 등 경제 활동까지 가능한 HMD 기반 몰입형 메타버스 플랫폼’을 전시했다는 것이 롯데정보통신의 입장이지만 관객으로서 느끼는 바는 달랐다.

가상 쇼핑몰 입장을 위해서는 남녀로 구분되는 아바타 2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쇼핑몰 내 전시된 옷을 리모컨으로 클릭하면 내 아바타에 입혀졌다. 문제는 옷 쇼핑에서 중요한 옷의 사이즈, 몸에 붙는 핏, 감촉, 옷감 재료 등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바타가 사용자의 체형과 옷 정보를 아주 자세하게 반영하지 않으면 상용화가 어렵겠다는 생각이다.

ESG 주제 강조에 성공한 SK, 메타버스 요소는 약해

SK 전시관은 한 마디로 ESG 주제에 충실하면서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었다. 흰 조명과 초록빛 플라스틱 나무, 사방에 넓게 펼쳐진 스크린으로 구성한 특별관으로 환경을 중시하는 특징을 제대로 강조했다. 반면 메타버스 요소라고 할 만한 것은 약했다.

SK관 입장 전에는 체험을 위한 디바이스와 이어폰을 받는다. 각 전시품 구간에는 근거리통신(NFC) 영역이 있는데 여기에 디바이스를 가까이 대면 전시품에 대해 설명하는 음성과 텍스트가 나온다. 미술관에서 많이 사용하는 디지털 도슨트 방식과 비슷해 익숙하지만 새롭진 않았다.

전시품들에 대한 설명에서는 대부분 환경 보호와 관련된 점을 강조했다. SK텔레콤(SKT)의 AI 반도체 사피온(SAPEON)은 데이터를 저전력 고효율로 처리한다. SKT 설명에 따르면 기존 GPU 대비 데이터 처리 용량이 약 1.5배이며, 전력 소모를 약 80% 절약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생산부터 재사용·재활용에 이르는 배터리 생애 주기의 솔루션을 제시했다. 자회사 SK온이 만드는 고성능 하이니켈 NCM9 배터리도 전시됐다. 이 리튬 배터리는 올해 CES 혁신상 2개 부문을 수상했다.

현대 모빌리티 전시에 아바타는 필수…제품과 연관성은 글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전시관은 모두 긴 대기 공간이 따로 마련됐다. 따로 구역을 나눠 마련된 두 전시관에서는 모두 입장 전 아바타를 만들어야 했다.

먼저 현대차 전시에서는 관객 각각에 대한 외모를 본 딴 로봇 모양 아바타를 만들었다. 이후 암막 커튼이 쳐진 장소로 4명씩 이동했다. 4명의 관객 아바타가 각자 원하는 포즈를 하나 정해서 움직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아바타들은 현대차의 메타버스 세계를 소개하고 각 관람객이 설정한 포즈를 취했다. 아바타와 함께 사진을 촬영한 후 메타버스 체험은 마무리됐다.

현대모비스에서도 역시 관객 모습을 스캔하는데 현대차와 달리 사람 모양 아바타를 만든다. 이후 아바타는 벽면 스크린에 펼쳐진 현대모비스의 메타버스 세계를 소개하며 미래 모빌리티 기술이 실현됐을 시 생활을 보여준다.

두 전시 모두에서 아쉬운 점은 우선 아바타가 관객을 거의 닮지 않았다. 안경이 쓴 사람이 있으면 안경 정도만 반영해주는 정도다. 두 번째는 아바타와 메타버스 세계가 전시에서 하는 역할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아바타가 말하는 내용 중 두 기업의 제품을 설명하는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현대모비스의 아바타는 사실 만들고 난 후에는 관객과의 소통 없이 혼자 움직여 전시품을 보면서 따로 스크린에서 찾기 힘들다. 현대차 부스에서는 메타버스 체험과 이후 이어지는 실물 전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15분에서 30분 정도 기다려 아바타를 만드는 대신에 실물 전시 내용을 빠르게 보는 방법이 효율적일 수 있다. 로봇 개 스팟과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실물을 보는 것이 훨씬 흥미로웠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박성은 기자> sag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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