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을 쓰게 만드는 콘텐츠의 힘은 어디서 올까?
웹소설 ‘가을, 만나다’를 쓴 최수현 작가가 22일 오후 카카오임팩트의 ‘크리에이터스데이 2019’ 강연에서 “똑같은 주제의 로맨스 소설이라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수백 수천 가지의 다른 이야기가 된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나는 ‘로맨스 소설은 판타지’라 생각했다.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겠어, 로맨스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라고.
강연을 들으면서 카카오페이지를 열어 최수현 작가를 검색하고 ‘가을, 만나다’를 찾아 클릭해봤다. 무료로 제공되는 두어 편을 보다가 아, 맞다 나 지금 강연 듣고 기사 쓰는 일을 하고 있었지, 하는 걸 깨달았다. 급하게 ‘예비 작가에 도움이 될 만한 말들’을 받아적으면서도, 강연보다는 이 로맨스의 전개가 더 궁금했다. 아니, 아이돌 뺨치게 잘생긴 대학교수가 연예인보다 예쁜 조교랑 연애하는 뻔한 얘기에 왜 클릭이 멈추질 않는 거지?
다시 기사를 쓰려 노트북을 켠 시간은 저녁 9시 50분. 그사이 총 51편을 결제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야 현질(결제)을 멈췄다. 뭐야. 내 시간 내 돈 어디 갔어.

지난해 카카오페이지의 거래액은 2300억 원이다. 한 편을 미리보기 하는데 100원을 쓴다고 치면, 독자들이 작년 한 해에만 23억 개의 콘텐츠를 결제한 셈이다. 나처럼, 스토리에 영업 당한 이들이다. 웹툰, 웹소설은 “돈을 줄 테니 빨리 다음 편을 내놓으라”는 충성독자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그 작가가 웹소설-웹툰-이모티콘으로 그렇게 대박을 쳤다며? 하는 소문에 예비작가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 예비 작가들아, 여기 교본을 줄 테니 훌륭한 콘텐츠들을 어서어서 만들어내렴, 하는 생각으로 카카오가 만든 강연이 ‘크리에이터스데이’다. 말도 안 되는 주제의 이야기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흡입력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강연은 22일부터 26일까지 닷새간 매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노들섬에서 열린다. 그 중, 첫날 발표한 최수현-옥한돌 작가의 이야기 일부를 전한다.
최수현 작가, “일단은 써봐라”
“로맨스 소설을 쓸 거라고 생각을 전혀 못 했다. (문예창작) 전공도 아니고, 글을 써 본 적도 없다.”
라고 말한 최 작가는 지금까지 카카오페이지에 열 편이 넘는 로맨스 소설을 연재했다. 대표작인 ‘그 여름, 나는’의 독자 수는 36만5000명이다. 작가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해봤다는데, 소위 대박을 쳤다.
최 작가는 자신의 사례를 비추어 “일단 써보라”고 조언한다. 본인은 첫 문장을 쓸 때 가장 많은 시간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이게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나는 재미있다고 쓰지만 남들은 어떨지 몰라서” 주저했다고 했다. 이때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최수현은 없었겠지. 일단 써보는 게 왜 중요하냐면, 써봐야 자신이 무엇에 흥미가 있고 무엇을 잘하는지 알 수 있게 돼서다.
최 작가 자신이 바로 그 사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추리 소설을 쓰자고 주인공을 만들었는데, 작중 인물에 정이 들어서 죽일 수가 없었다. 원고 속에서 죽거나 잡아야 했던 두 사람을 연애하라고 맺어주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무 문자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쓰다 보면 유독 잘 써지는 부분이 있다. 갈등이나 위기 국면에서 잘 써지는 부분을 살피면 적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최 작가의 조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듯, 소설의 상당수는 유사한 주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새로워 보이게 끌고 가는 힘의 축 하나는 캐릭터다. 어차피 이야기는 처음에 짠 시놉시스 그대로 흘러가지 못한다. 그래도 이야기가 흔들리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정교하게 짜인 캐릭터의 힘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인물 캐릭터를 확실하게 잡아라. 예를 들어 화가 나면 하는 버릇 같은 아주 세세한 부분부터”라고 그는 말했다.
어쨌든 시작했으면 끝을 봐라(결말까지 써라), 독자들이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에서 연재주기에 맞춰 웹소설을 본다는 점을 고려해 중간중간 줄거리를 잊지 않도록 설명해주는 보조 캐릭터를 만들어라, 일상에서 보이는 여러 장면이나 상황을 살피면 소재로 이어지는 상상력을 불러올 수 있다, 등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다.

옥한돌 작가 “익숙한 데서 상상력이 나온다”
옥한돌 작가의 작품은 ‘포갓레인저’다. 현재 시즌3이 절찬연재중이다. 네이버웹툰 베스트도전에서 시작해 레진코믹스를 거쳐 카카오페이지에 안착했다. 장르는 소년만화.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즌1, 2의 카카오페이지 누적 독자 수는 13만6000명이다.
슈퍼히어로물은 많지만, 포갓레인저가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익숙함을 바탕으로 한 새로움이다. 옥 작가는 이날 “상상력은 익숙함으로부터 나온다”면서 “상상력과 오리지널이 언제나 새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새롭다’는 느낌은 기존 비교 대상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짚은 말이다. 옥 작가에 따르면 “새로움에는 익숙함의 전제가 필요”한데 “창작자 본인이 겪어보지 않은 새로움을 상상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제목부터가 신선한데 익숙하다. 포갓레인저를 세 번 입에서 발음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파워레인저’에서 따왔다. 옥 작가는 “어려서부터 많이 봐온 전대물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익숙함에서 찾은 새로움은 출연 인물들에서도 알 수 있다. 포갓레인저의 히어로는 ‘사방신’을 모태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백호, 주작, 현무, 청룡이 그대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방신의 힘을 빌어, 이들을 대신할 인간 전사로 재탄생했다. 이들 포갓레인저와 싸우는 악당은 세상을 장악하려는 신선과 도깨비, 12지신 등이다. 동아시아의 이야기에서 자주 나오는 아주 친근한 소재다.
다만 옥 작가는 이들 캐릭터를 그리는데 고정관념을 그대로 적용하진 않았다. 예컨대 뱀은 통상 ‘악’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옥 작가가 그리는 뱀은, 용이 되길 소망하면서 정의에 이끌리는 캐릭터다. 그는 “뱀은 먼저 공격받지 않으면 물지 않는다. 뱀에 대한 혐오는 본능인가 학습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옥 작가의 말을 종합해보면, 결국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에 익숙해져 있나를 고민해야 한다”이다. 예컨대 옥 작가는 움직이는 신체를 잘 그리기 위해 동영상을 보면서 한 컷 한 컷씩 따라 그리면서 연습하다 보니 신체 -여성과 남성의 몸- 를 (고정관념에 맞춘 이분화로) 익숙하게만 그려왔단 걸 알게 되었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예비 작가들에게 “상상력이 힘을 쓰는 근육이라면, 고민은 그 근육을 키우는 운동”이라면서 “내가 어디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아는 것이 상상력의 근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저러나, 이 글을 보는 독자님 중에 작가나 PD님이 있다면 연락 좀 주세요. 저는 [웹툰작가를 만나다]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 중인데, 섭외가 가장 어렵답니다. 웹소설 작가님도 물론 환영합니다. 제 이메일 주소는 smilla@byline.network 입니다. 24시간, 이메일은 열려있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