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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회장이 전통의 시사주간지 ‘타임’을 인수했다. 인수가격은 1억9000만달러(약 2140억원).

타임은 전 세계 200만 구독자를 가진 미국 최대 인쇄 매체다. 국내에서도 영어공부를 하는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매거진으로 유명하다. 타임 표지에 사진이 실린 인물은 그 자체로 뉴스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협상가’라는 타이틀로 타임 표지를 장식한 바 있다.

마크 베니오프 회장은 IT업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이상하리 만치 확산이 더디지만 세일즈포스는 전 세계 고객관계관리(CRM) 소프트웨어 시장을 삼킨 괴물이다. 소프트웨어를 온라인 서비스로 이용하는 SaaS(Software as a Service)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세일즈포스는 연매출 100억달러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이며, 베니오프는 타임의 자매지 포천이 지난 해 선정한 ‘올해의 기업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베니오프는 16일 타임 홈페이지를 통해 “타임의 힘은 인물과 이슈에 대한 독특한 스토리텔링이었고, 세계 역사와 문화의 보물”이라며 “타임을 우리 가족의 ‘임팩트 투자’ 포트폴리오의 한 부분으로 갖게 돼 영광”이라고 밝혔다.

타임이 이번에 처음 팔린 건 아니다. 지난해 출판 미디어 그룹 메러디스가 95년 역사의 타임을 인수해서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러나 메러디스는 불과 10개월 만에 베니오프에게 타임을 되팔았다. 메러디스에 인수될 때 타임의 가격이 18억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베니오프는 헐값에 타임을 인수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포춘, 머니,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등의 자매지를 제외하고 오직 타임만 인수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하지만, 인쇄 미디어 시장의 붕괴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타임은 지난 20년 동안 구독자가 절반으로 줄었다. 광고는 온라인에 몰리면서 인쇄 미디어의 광고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메레디스는 인수하자마자 지난 3월에 타임사의 인력 1000명을 10개월내에 해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베니오프가 타임을 인수한 것은 비즈니스 접근이라기 보다는 저널리즘의 가치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베니오프 회장이 ‘임팩트 투자’라고 표현한 것도 이같은 이유다. 임팩트 투자는 재무적인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함께 추구하는 투자를 의미한다.

흥미로운 점은 IT업계의 억만장자들이 개인적으로 위기에 빠진 미디어를 인수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과 워싱턴포스트다. 베조스 회장은 2013년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다.

제프 베조스 회장이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할 때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세계적 정론지가 일개 기업의 뒤치닥거리나 하게 됐다는 자조가 섞인 반응이 많았다. 직원들을 착취하던 아마존의 회장이 언론의 힘으로 자신을 포장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워싱턴포스트는 베조스 회장에 인수된 것이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워싱턴포스트는 베조스에 인수된 이후 죽어가던 인쇄 미디어에서 디지털 기업으로 거듭났다. 온라인 구독자수가 뉴욕타임즈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고, 다른 언론사에 CMS(콘텐츠관리시스템)을 판매하는 IT기업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저널리즘이 꺾인 것도 아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베조스 회장이 자신들을 인수하자 비판적 의견도 다수 담아낸 특집 기사를 쓰기도 했다.

중국의 제프 베조스라고 할 수 있는 마윈 알리바바 그룹 전 회장도 미디어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알리바바 그룹은 지난 2015년 상하이 미디어 그룹(Shanghai Media Group Inc) 산하 제일재경신문의 지분 30%를 매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리바바그룹은 홍콩 유력 영자신문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인수했다.

사실 언론이 대기업이나 성공한 기업인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다. 여론 형성이라는 언론의 힘을 특정 기업이나 기업인이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재벌들도 언론사를 소유했을 때가 있었다. 삼성-중앙일보, 현대-문화일보, 한화-경향신문 등이 대표적이다. 재벌의 소유가 된 언론사는 그 기업에 대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재벌의 나팔수가 되거나 방패 역할을 주로 했다.

물론 마크 베니오프나 제프 베조스가 국내 재벌처럼 소유한 언론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특정인이 언제든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언론이라는 존재에는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100년 역사의 전통 미디어가 이대로 죽어가는 것을 방관하는 것도 답은 아닐 것이다. 살아있어야 저널리즘이든 뭐든 실현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IT창업자들의 ‘선한 의지’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