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 갑서양] 13일차 일기- 한심왕을 만나다
바이라인네트워크 ‘디지털 노마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5월 한 달간 제주에 왔습니다. ‘놀당 갑서양’은 제주 방언으로 ‘놀다 가십시오’란 뜻입니다. 여기에는 한 달간의 제주살이 뒷이야기, 혹은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고픈 얘기를 매일매일 사진 일기 형식으로 적습니다. 서너 줄 정도 짧은 글일 때도 있을 테고, 꽂히면 길게도 갑니다. 모든 글감과 사진은 당일 산지 직송한 신선한 재료만 사용합니다. 독자 여러분, 바이라인네트워크에 오셔서 제주 일기 읽으시고 놀당 갑서양!
2018년 5월 14일 월요일, 이젠 제법 햇볕이 따가움
제주에서 어마어마한 사람을 만났다. 얼마 전 #바이라인네트워크배_한심왕_선발대회에서, 무려 36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일등을 차지했던 청년, 김무건 씨다.

그때 이 분이 일등한 사연은 이러하다.
“국가지원 사업 발표가 오늘이라서 손꼽아 기다렸는데, 최종 산출물까지 만들고 메일 보내기를 안 눌러서 애초에 지원이 안 되었다는 슬픈 소식입니다.”
절레절레.
사실, 김무건 씨가 진짜 한심한 건 이 사연이 아니다. 무려, 한심왕 대상 기념 인터뷰를 위해 당일치기로 제주에 내려왔다는 점이다. 이건, 진짜 한심하다. 첫 인사로 서로의 한심함을 잠깐 위로하고 나서,
맥주 두 병과 고등어 조림을 시켜놓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무리 한심왕이라고 해도 아무런 콘텐츠가 없다면 인터뷰는 어렵다. 무건 씨가 기자의 구미를 확 당긴 것은, 그가 현재 진행 중인 ‘서울라이트’다.
# 서울라이트_ 영어로 서울 사람을 일컫는 말(출처=나무위키). 그러니까 뉴욕 살면 뉴요커, 런던 살면 런더너, 파리 살면 파리지앵 같은 거다.
그런데 ‘서울라이트’라는 개념은 다소 모호하다. 뉴요커 하면, 아침에 붐비는 횡단보도를 커피 한 잔 들고 잽싸게 건너는 커트 머리에 검정 옷을 입은 길쭉길쭉한 여자 사람 이런 거 생각나는데, 사실 서울라이트라는 말은 그 단어조차 생경하지 않나.
무건 씨가 서울라이트에 꽂힌 것은 서울시 청년예술단 지원 사업에 공모하면서부터다. 서울사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예술가로 승화해 잡지로 담아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떨어졌다.
“처음부터 생각을 다시 해보기로 했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울라이트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서울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리고 서울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 100명 쯤 만나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서울라이트의 공통 분모를 뽑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서울 사는 사람 100명의 사진을 찍고 있어요, 4월 중순에 시작해서 지금 18명 정도 찍었어요. 하루에 한 명, 또는 두 명씩 찍기도 해요. 한 번에 한 시간 반에서 네시간 까지 소요가 되죠. 신기한 건 이들이 좋아하는 서울의 장소, 경험 등이 모두 다르다는 거예요.”
모델은 주변 소개로 받기도 하고, 신청을 받기도 한다. 모델이 자신이 좋아하는 서울의 장소를 정하고, 그에 맞는 콘셉트를 정해 촬영한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이 원한 촬영 장소가 겹친 적이 없다. 서울에 대한 생각도 가지각색이다. 이 작품 결과는 무건 씨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같은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공통점은 있어요. 서울은 이들에게 꿈을 쫓는 장소라는 거죠. 특히 서울 토박이가 아니라 이주해온 사람들은 서울에서 이루고 싶은게 있는 사람들이에요.”

무건 씨는 콘텐츠 기획을 업으로 하는 스타트업 ‘아날로공’의 대표이기도 하다. 재작년 창업해서 현재 세 명이 같이 일하고 있다. 영상, 음악, 단편 영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기조 아래 모였고, 외주 홍보 영상을 만들어주면서 돈을 번다.
단편 영화도 준비 중이다. 지난해 제주에서 찍었던 로맨스 영화는 여러 사정으로 개봉하지 못했다. 올해는 자신이 운영하던 카페 경험담을 토대로 ‘서로 속고 속이는 코미디’ 단편 영화를 찍을 예정이다. 그는 감독이지만, 배우로 출연도 고려 중이다. 주연은 아니다. 그동안 밴드 보컬, 기타리스트, 카페 주인, 이자카야 직원 등 다양한 일을 해왔고, 그 경험을 지금 콘텐츠 기획에 쏟아붓고 있다.
“올 연말까지는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더 하고픈 일을 해보면서 살 거예요. 그리고 다행히 수익이 많이 나오면 내년에도 이 일을 하겠죠. 돈을 많이 못 벌면요? 그럼 그때는 새로운 일을 해보는 거죠.”
젊고, 젊은 만큼 해보고 싶은 일을 한다. 그 일은 때로는 남들이 보기에 한심하다. 그런데 그 한심함 속에서 빵 터지는 게 나오는 것이 콘텐츠 기획의 본질 중 하나 아니던가.
[제주=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