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장애 사원이 일반사원보다 성과 30% 높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0년, 나는 한 IT 벤처기업(요즘 말로 하면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온라인 게임과 자동번역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회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IT 스타트업 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좋은 인재를 구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니던 그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채용 중이던 어느 날, 한 청년이 면접을 보러왔다. 겉보기로는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몇 마디 말을 나눠보고 그에게 약간의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음이 매우 어눌해서 대화를 나누기가 불편했다. 그의 귀에는 보청기가 끼워져 있었다. 아마 청력이 좋지 않아 언어장애가 생긴 듯 보였다.

그는 간절하게 입사를 희망했지만, 결국 우리 회사에 입사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 회사는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입사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인력이 급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마 그의 장애가 입사에 장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이력서에는 각종 자격증과 교육과정 수료경력이 빼곡히 채워져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합격한 사원들은 이력서에 학력 이외에 아무 것도 없는 이들도 많았다. 개발자로서 그의 실력과 관계없이 오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회사는 그를 뽑지 않았다.

ebay갑자기 17년전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은 지난 토요일(15일) ‘장애인 IT진로 설명회’를 참석하고 나서였다. 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 위드이노베이션(여기어때), 메쉬코리아(부릉), 씰컴퍼니(스코어센터LIVE), 스마트포스팅, 알지피코리아(요기요/배달통), 큐딜리온(중고나라), 닷 등 8개 IT 스타트업 기업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진행한 행사였다.

행사장은 간절한 눈빛을 가졌지만, 몸이 불편한 청년들로 가득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 청각 장애인, 뇌병변 장애인 등이었다. 정권이 네 번이나 바뀌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장애인이 직장을 얻는 문제는 전혀 진보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은 볼 수 있었다. 17년 전 내가 몸담았던 회사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지만, 이 행사에서 이런 편견이 깨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사례는 큐딜리온이다. 큐딜리온은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를 운영하는 회사다. 포털의 카페에서 시작해 독립적인 앱을 만들고 7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전자상거래 업체로 거듭났다.

큐딜리온은 4명의 장애인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다. 이들은 주로 부정거래를 모니터링 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중고나라는 다양한 사람들이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부정한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도 많다. 게시판에서 일어나는 거래에서 문제가 있는 거래를 찾아내는 것이 장애인 직원들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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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큐딜리온 대표

이승우 큐딜리온 대표는 장애인 고용의 장점을 몸으로 체득했다.

“부정거래 모니터링, 필터링 업무는 저희에게 매우 중요한 업무인데 일반 사원들은 단순업무, 중요치 않은 업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일반 사원은 이 업무를 맡으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장애인 사원은 포기하지 않고 업무를 지속하면서, 동시에 업무 개발까지 진행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대표는 장애인 직원들의 이런 장점을 확인한 후 이들을 별도의 팀으로 구성해서 더 중책을 맡겼다. 지금은 이 팀은 거래 모니터링뿐 아니라 사기예방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고, 일반 사원 대상 필터링, 모니터링 업무 교육도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사기예방 프로그램은 저희가 현재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인데 여러 데이터를 보고 정당한 거래인지 아닌지 판별해본 경험이 많은 장애인 직원들이 패턴을 만들어 개발자, 기획자와 함께 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장애인 사원이 일반 사원보다 30% 정도 더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어 모니터링 업무는 장애인 사원 위주로 뽑고 있다”면서 “장애인표준사업장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큐딜리온의 서정원 사원은 “큐딜리온 입사 전에는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데, 정규직으로 채용돼서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면서 “고용 불안이 해소되니까 삶의 만족도 올라갔고, 나도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서 사원은 “중고나라 이용하는 회원들이 더욱 편리하고 안전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든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이 행사를 계기로 장애인 고용에 대한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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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를 가진 위트라이프(Witlife) 고광채 대표의 사례는 감동을 주기까지 했다. 고 대표는 오픈마켓에서 상품을 파는 판매자인데 이베이코리아에서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 ‘나의 왼발’을 통해 큰 변화를 겪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판매자 교육을 받은 고 대표는 지난 해 3월 매출 3000만원 정도하는 회사가 9월 매출 7000만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오픈마켓에서 더 많이 팔 수 있는 ‘노하우’를 배운 덕분에 가능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고 대표는 이 노하우를 꽁꽁 숨겨야 한다. 내가 더 많이 팔려면 다른 사람들은 이 노하우를 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 대표는 이베이코리아에 편지를 보내서 자신이 배운 노하우를 다른 장애인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이베이코리아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농아인 온라인 창업스쿨’을 열었다.

이베이 정경열 팀장은 “고 대표가 열정적으로 다른 농아인 판매자들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수화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큐딜리온처럼 장애인 채용 경험이 많은 회사만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씰컴퍼니처럼 아직 경험이 없는 회사도 있었다. 씰컴퍼니 관계자는 “저희 업무 중에서 DB관리, 모니터링 업무는 신체적 능력에 제약을 받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는 재택 업무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 행사에 참석해서 인재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행사에서 기업들은 각자 채용 부스를 운영하며, 현장 상담과 면접을 진행했다. 현장에 참가한 대학생 윤기훈씨(25, 가명)는 “중증 장애인으로서 취업 길이 막막했다. 그런데 오늘 행사를 계기로 스스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지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며 “이런 기회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장애인의 사회진출과 권리에 관심 많은 IT, 스타트업 기업들이 합심해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며 “장애인 구직자에 대한 인식 개선과 기회 부여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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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es: 기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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