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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 대표

성수1가 골목에 접어들면, 옛 공장용지에 올린 창고형 맥줏집이 나온다. 맥아 냄새 가득한 야외 테이블에 앉아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이하 어메이징) 대표를 기다렸다. 무언가 한가로웠다. 그러니까 이런 기분이 들더라. 될 대로 되라지. 김 대표를 만나면 술 얘기나 들어보자. 인터뷰는 카디건 없이도 춥지 않던 지난 19일 한낮에 이뤄졌다. 볕 따신 봄날은 초여름을 예고한다. 본격적인 맥주의 계절이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술도가가 있었잖아요? 저마다 특색 있는 술을 만들었죠.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일제 시대 때 만들어진 대기업 두 곳이 80년 동안 똑같은 맥주만 팔고 있어요. 웃기죠? 규제와 보호로 일관된 과점산업이 이 시장이에요.”

듣고 있으니, 맥주 시장은 사지선다 객관식 답안지 같았다. 카스, 하이트, OB, 클라우드 말곤 선택지가 (거의) 없다. 어메이징은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어 파는 곳이다. 크래프트란, 개인이나소규모 양조업자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만드는 맥주를 말한다. 재료, 만드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맛의 맥주가 나올 수 있다. 도수도 4도에서 10도 사이로 갖가지다. 고르는 사람 입장에선 크래프트는 주관식 답안지인 셈이다.

어메이징은 두줄 보리를 수입해 직접 운영하는 양조장에서 맥주를 만든다. 성수동 양조장+펍(브루펍)이 본점이다. 아무리 맛있는 맥주라도, 수입하느라 유통 기간이 길어지면 그 맛이 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지론이다. 서울 잠실과 인천 송도에도 브루펍을 각각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브루펍을 다섯군데로 확장해 거점별 동네 맥주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양산 공장을 만들어서 동네 맥주를 병과 캔에 담아 파는 것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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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못 먹는 맥주덕후, 양조장을 차리기까지

김태경 대표는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제일 좋다는 대학을 나왔고, 남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외국계 큰 회사에서 일하다 뛰쳐나와 ‘양조장’을 차린 다소 특이한 이력 덕이다. 얼마나 술을 좋아하면 직장 때려치우고 업을 바꿨을까 하는 호기심이 투영된다. 그런데 뜻밖에 맥덕(맥주 덕후) 김 대표는 생각보다 술이 약하다. 그가 술 중에 맥주를 제일 좋아하는 것도 “소주는 도수가 세고, 와인은 한 병 다 마시기 부담스러워서”다.

맥주 맛은 유학 시절 알았다. 하필, 김 대표가 유학 간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교 인근은 질 좋은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지천으로 깔린 지역이었다. 슈퍼마켓만 가도 수십 종류 맥주가 있었다. 양조장 투어를 시작했다. 한국은 카스, 하이트, OB가 천하지삼분하던 시절이다. 공부가 끝나고 한국에 들어가면 더는 맛있는 맥주는 먹지 못하겠구나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김 대표가 한국에 돌아온 2012년엔 ‘비교 대상이 없어 맛없는지도 모르던 맥주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 맥주 시장 대격변기였어요. 일단, 대기업 맥주 시장에 롯데가 들어왔고요. 이태원 경리단길을 중심으로 수제 맥주 붐이 일어났죠. 수입 맥주가 인기를 얻었고, 홈브루잉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고요. 가벼운 라거 맥주 일변도 시장에 요동이 일어난 거죠.”

2015년에 암스테르담에 교환근무를 갔다가 국제공인 맥주 전문가 자격증을 땄고, 아예 사업을 하자는 결심을 했다. 한국에서 인기를 얻는 세계 맥주보다 더 맛있는 지역 맥주를 만들 자신이 있었다. 버드와이저가 아무리 맛있어도,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그 지역 술인 ‘스노우’ 아니던가. 그에겐 “카스랑 하이트가 맛이 없던 것도 다행”이었다. 이미 한국 사람들도 맛있는 맥주에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이 창업을 생각한 결정적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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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서른가지의 크래프트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가 뜰 수밖에 없는 이유

“세계에서 단일 품종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게 소주에요. 얼마나 무식한 술이에요? 단 한 종의 술을 온 국민이 먹는다는 게 말이에요. 군국주의를 연상시키는 획일성의 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뜨끔했다. 맥주는 배불러 싫다고, 그냥 소주 마시고 빨리 취하자던 내 습관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김 대표가 말하길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양성의 세계”다. 일도 음주도 집단으로 죽자고 해대던 단합과 효율, 일관의 시대에서 다양과 개성의 시대로 넘어가는 중간이다. 그 대표적인 식음료가 맥주다. 사람들이 맛있는 것, 즐거운 것, 다양한 것을 찾을수록 인기가 늘어날 대표적인 술이 맥주란 것이다.

“크래프트는 국내 맥주 시장에서 아직 1% 규모밖에 안 돼요. 그런데, 앞으로 스무 배는 더 커질 거라고 봐요. 사람들이 즐기는 술의 도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 부인할 수 없는 트렌드에요. 결국은, 마시고 죽자는 문화가 싫은 거죠. 그 증거로, 소주나 위스키 소비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대신 와인 같은 술의 소비량은 늘어나고 있고요. 혼술 문화도 생기잖아요. 다양한 술을 즐겁게 즐기자는 거죠. 술을 즐기는 문화가 오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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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브루잉에선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판다.

맥덕들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만들려면

어메이징에선 교육이 자주 있다. 내부 직원을 상대로 한 전문적 맥주 교육부터 손님을 위한 교양 강연, 외부 기업 강의까지 다채롭다.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직원교육이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맥주 소믈리에나 맥주 유통업을 했을 터인데, 한국에선 그런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어메이징을 ‘맥주를 만들어 팔고, 맥주 전문가를 키워내는 스타트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이 여기에 오면 작은 양조장에서 맥주를 만드는 전 과정을 모두 경험하니까, 맥주와 함께 성장하는 게 될 수 있죠. 국내 맥주 대기업에 들어가면 거대한 하나의 부속이 되겠지만, 여기 작은 스타트업에 오면 모든 과정을 겪고 책임과 의무를 갖게 되죠. 여기서 배운 사람들이 나중에 나가서 양조장을 차리고, 어메이징브루잉 출신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김 대표는 최근 어메이징의 사업범위도 넓히고 있다. 꽤 유명한 레스토랑과 함께 배달 합작 법인을 준비 중이다. 종목은 치킨. 2016년 8월부터 온라인으로 주류 배달이 가능해졌으나, 음식과 함께 주문해야 가능하다는 맹점을 타개하려는 방법이다. 치킨과 함께 시켜먹는 수제 맥주라니.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료들과 만나 어메이징브루잉의 수제 맥주 ‘첫사랑’을 마셨다. ‘첫사랑’은 어메이징의 대표 맥주다. 과일과 꽃향이 어우러져 향긋한데, 그 맛은 꽤 독했다. 첫사랑 같은 술은, 오랜만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