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대법원의 반란(?)…회피연아 동영상 사건의 최종 결말

moonhwa3.jpg‘회피 연아’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기억하십니까?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 귀국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공항에서 김연아 선수를 포옹하려다 거부당한 것처럼 보이는 영상입니다.

지난 6년간 이 동영상으로 촉발된 중요한 법적 분쟁이 있었는데, 지난 10일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났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2010년 3월입니다. 네티즌 차 모씨는 네이버에 한 동영상을 ‘펌’이라며 올렸습니다. 우리가 아는 회피 연아 동영상입니다. 이 영상은 많은 이들에게 회람됐고, 유 전 장관은 일부 네티즌들에게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화가 난 유 전 장관은 차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이에 수사에 나선 검찰은 동영상을 올린 계정 소유자를 알기 위해 네이버에 차 씨에 대한 통신자료를 요청했습니다. 통신자료란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해지일 등 계정 정보를 말합니다.

당시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 인터넷 포털 업체들은 검.경이 수사상 필요한 통신자료를 요청할 때 응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왜냐하면 법에 그렇게 돼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전기통신보호법은 수사기관이 사업자게에 (영장없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할 수 있고, 사업자는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는 것은 애매모호한 표현입니다. 따라야 한다는 것인지,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지, 따라도 되고 안 따라도 된다는 것인지…

어쨌든 네이버는 회피 연아 동영상을 올린 차 씨의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에 넘겼습니다. 요청에 따른 것이죠.

네이버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겼다는 사실을 안 차 씨는 손해배상을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회원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네이버가 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따라 차 씨와 네이버의 지난한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1심 재판부는 네이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랐을 뿐, 개인정보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2심 재판부는 네이버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전기통신보호법의 “따를 수 있다”는 표현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사업자가 사안의 시급성과 중요성에 따라 선별해서 응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회피 연아 동영상 사건이 그렇게 시급하거나 중요하지도 않은데, 회원의 개인정보를 성급히 수사기관에 전달한 것은 개인정보보호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2심 판결 이후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 인터넷 포털 업체들은 소위 ‘멘붕’에 빠졌습니다. 기업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법(법원)이 정해주지 않고, ‘니네가 알아서 판단해라, 알아서 하되 나중에 그 책임은 져라’라는 의미처럼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심 판결 이후 인터넷 포털 업체들은 일체의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구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2심 판결을 근거로 하면 수사기관의 임의적인 요청에 응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 포털은 법원의 영장이 있는 요청(감청, 압수수색 등)에만 응해 왔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또 뒤집어졌습니다. 대법원은 네이버의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른 네이버의 행동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무죄 판결을 받은 네이버의 반응이 애매모호합니다. 기뻐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입니다. 2심 판결 이후 네이버는 법원 영장이 없는 일체의 통신자료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점은 속상하겠지만, 법원에 의해 행동방향이 정해졌다는 점에서는 속이 시원했을 겁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이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다시 애매해졌습니다. 앞으로 네이버를 비롯한 인터넷 포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사기관의 영장없는 통신자료 요청에 응해야 할까요, 응하지 말아야 할까요?

과거에 통신자료 요청에 응했던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점은 알겠는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라는 것인지는 불명확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규칙이 정해지면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네이버가 2심 판결 이후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응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규칙이 애매하면 기업은 힘들어집니다.

이런 점에서  대법원이 어떤 취지로 그런 판결을 내렸는지 파악하기 위해 네이버는 동분서주하는 모습입니다.

네이버 관계자는 “아직 판결문을 받아보지 못했다”면서 “통신자료 요청에 응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는 판결문을 보고 나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여연대는 대법원 판결 이후 ”오늘 대법원 판결은 법에 따라 이루어진 절차에 응한 것만을 두고는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전기통신사업자들이 이 판결을 계기로 수사기관이 다시 영장제시 없이 회원들의 신상정보를 요구할 때 응해야 한다는 선언은 아니다”면서 “2012년 11월부터 주요 포털사들이 이용자들의 통신비밀의 자유와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통신자료 임의제공을 중단한 것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글. 바이라인 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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