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 디지털자산 TF, 스테이블코인 ‘비즈니스 설계’ 관건
하나금융지주가 주요 금융그룹 최초로 디지털자산 전담 조직(TF)을 신설하며 관계사 간 공동 대응 체계 구축에 나섰다. TF장에는 박근영 하나금융티아이(TI) 대표가 선임됐다. 박 대표는 그룹 내 디지털 총괄을 거쳐 디지털 전략과 IT 인프라 고도화를 주도해 온 인물로 꼽힌다.
이번 인사는 시점 상 더욱 주목된다. 박 대표는 2021년부터 하나금융티아이를 이끌어왔으며 다음 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연임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시점에 전략 조직의 수장을 맡겼다는 점에서, 그룹이 박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인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디지털자산과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새로운 금융 생태계 구축 전략을 본격화한다. 디지털자산은 향후 자본시장과 결제 인프라 혁신을 이끌 핵심 영역으로, 그룹 차원의 대응 체계가 강화될 전망이다.
TF는 디지털자산 관련 법제화 흐름에 맞춰 상품·서비스·인프라 구축을 신속하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준비금 관리, 실생활 사용처 확대, 보안 체계 고도화, AI 연계, 통화·외환 관련 정부 정책 공조 등 기술·산업·정책 전반에 걸친 협력 체계를 우선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박 대표는 하나금융 디지털 전략과 함께 성장해왔다. 그는 1991년 하나은행 입행 후 신사업지원부, IT통합추진부, 정보보호본부(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 ICT본부 등을 거친 IT·디지털 전문가다. 전산 통합과 대규모 IT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플랫폼 전환과 디지털 혁신에 기여해 왔다는 평가다. 디지털자산과 관련한 글로벌·국내 논의가 확산되는 가운데,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구조적 변화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해석도 있다.
백연주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안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은행의 안정적 발행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금융권도 디지털자산 대응을 서두르는 분위기”라며 “스테이블코인 상용화는 지급결제 시스템, 은행, 카드사까지 전반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TF로 대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디지털자산 시장 진입은 금융그룹 입장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스테이블코인 등장으로 예금이 가상자산 지갑으로 이동하고, 스테이킹 등 탈중앙화 금융상품이 확산될 경우 전통 금융권에는 구조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해외 웹3.0 기업까지 경쟁자로 등장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금융당국의 금산분리 완화 등 규제 흐름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하나금융은 원화 스테이블코인뿐 아니라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등 글로벌 생태계까지 염두에 둔 확장 전략을 추진 중인 것으로 분석된다. 하나금융은 올해 5월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USDC 발행사 서클과 포괄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 대한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가상자산 수탁사 비트고와 합작법인 ‘비트고코리아’를 설립해 글로벌 디지털자산 인프라와의 연계를 강화해 왔다. 비트고코리아는 국내 시장 진출을 위해 올해 6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했다. 현재 관련 인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며, 비트고코리아 측은 규제 범위 내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국내 시장 진입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표처럼 기술 전문가를 조직 수장으로 임명한 것은 웹3.0 기업들처럼 기술 중심의 서비스 설계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다만 TF가 본격적인 성과를 내려면 ‘조직 간 조율’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TF는 문제 해결 중심 조직인 만큼 IT 전문가가 이끄는 것이 적절하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내부 인력만으로는 가상자산에 대한 이해도와 실무 추진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그룹처럼 매트릭스 조직(기능·프로젝트 부서 겹침형 이중보고 체계) 구조에서는 기술 조직이 사업 조직을 설득하거나 전사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수익 모델이 명확하지 않고 제도도 완비되지 않은 과도기여서 비즈니스 중심 설계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금융이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스테이블코인·디지털자산 전략을 현실화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