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사태, 규제로 접근하면 독점 강화된다″

티메프, 홈플러스, 발란과 같은 미정산 사태의 원인이 국내 유통 플랫폼의 정산 시스템이 아닌 특정 기업의 도덕적 문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들 기업의 미정산 사태 원인을 정산 시스템으로 보고 만들어지는 반시장적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 정책이 오히려 스타트업과 중소 플랫폼을 죽이고, 독과점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7일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국내 유통 플랫폼 생태계의 미래’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유병준 교수와 한양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 강형구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이날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유병준 교수는 국내 온라인 플랫폼 시장 구조와 정책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7일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국내 유통 플랫폼 생태계의 미래’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유병준 교수

유병준 교수는 대기업을 겨냥한 정부의 플랫폼 규제가 오히려 영세한 온라인 소상공인 사업에 피해를 준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특히 정부가 제시한 20일 정산 기한 단축과 부정적인 수수료 인식 문제 등은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오는 정책이며, 위메프와 홈플러스 사태는 특정 기업이 경영상 도덕적 문제를 일으킨 사례로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네이버나 쿠팡 등 주로 큰 플랫폼은 고객과 판매자를 위한 선정산 서비스를 위해서 노력해 왔다. 실제로 선정산 서비스는 효익을 제공하고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네이버와 쿠팡의 경쟁 체계와 더 많은 우리나라 유통 플랫폼들이 있어 판매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의 폭을 갖고 있고, 양질의 서비스를 쓰고 있다.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판매자들을 유도하고 설득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유 교수는 3강 또는 2강 체제로 굳어지고 있는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 플랫폼 시장은 다양한 플랫폼들이 경쟁하고 있어 좋은 환경이라고 봤다. 네이버나 쿠팡 같은 대형 플랫폼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고, 판매자는 특정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유 교수는 판매자는 특정 플랫폼에 강제로 묶인 것이 아니라 편의와 조건이 좋은 플랫폼을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대형 플랫폼들이 일정한 정산 주기 이후에 판매 대금을 지급하면서 현금 흐름이 지연되는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선정산 서비스를 도입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선정산 서비스는 판매자가 배송을 완료한 후 판매 대금을 구매 확정 이전에 미리 지급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선정산 서비스는 현금 유동성 확보와 경영 안전성 강화 효과가 있다.

유 교수는 “선정산 서비스로 판매 대금의 정산 주기가 짧아지면서, 판매자는 단기 대출과 같은 금융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가 조사한 바로는 중소기업의 평균 현금 보유는 27일 정도다. 그는 메이저 플랫폼인 네이버나 쿠팡 등에서 선정산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단순 조기 지급을 넘어 판매자에게 재무 안전성을 주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정산 기간이 짧으면 판매자에게 유리하지만, 플랫폼 입장에서는 일종의 서비스에 가깝다는 의견이다. 유 교수는 유통 업계와 기업들은 기존 30에서 90일의 정산 주기가 익숙하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선정산 서비스는 자금을 유통하는 데 편의를 제공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20일 결제 기한 단축 규제는 마이너 플랫폼들이 사업을 지속할 수 없는 규제 방안이다”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네이버와 쿠팡 같은 대형 플랫폼은 20일로 결제 기한을 단축해도 정산에 무리가 없지만, 규모가 작은 플랫폼들은 진입장벽이 된다고 봤다. 이 규제가 보기에는 소상공인과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지만, 실상은 영세한 플랫폼이 사업을 운영하기 어려워지고 대형 플랫폼만 살아남으면서 독과점 위협이 더 커진다고 유 교수는 분석했다.

“11% 수수료가 부담스러우면 사실은 사업하면 안 된다”

유 교수는 유통 플랫폼은 상품을 중개하고 수수료를 통해 이익을 얻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유 교수는 플랫폼이 운영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가정이 비논리적이라고 짚었다. 플랫폼을 운영하기 위해선 임금이 높은 개발자를 고용해야 하고, 서버 비용이나 건물 사용료, 망 사용료 등 다양해 운영 비용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유 교수가 분석한 결과, 네이버, 쿠팡 같은 메이저 플랫폼들의 수수료는 평균 11% 정도다. 유 교수는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같은 대형 플랫폼은 판매자가 광고 없이도 사업이 되지만, 오히려 마이너 플랫폼들은 광고가 강제된다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진짜 문제는 높은 수수료가 아니라 영세한 소상공인들이 과다한 경쟁에 몰려있는 우리나라의 유통 구조라는 점을 지적했다. 유 교수는 “시장에 진입하는 소상공인한테 지원금을 주는 정부의 정책은 경쟁을 더 부추길 뿐이고 혈세 낭비”라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유통 산업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시장적 규제를 없애고, 수수료 문제 같은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유 교수는 “포퓰리즘 같은 정책이 아닌 수백만의 소상공인을 어떻게 하면 잘 살게 할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힘줘 말했다.

다음 발표자로 나선 강형구 교수는 유통 플랫폼을 재무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결과를 공유했다.

“재무 관리는 재무 관리로 풀 수 있지 않을까. 이걸 왜 유통 산업 전반의 문제로 보지? 이게 항상 의문이다”

강 교수는 “재무적으로 분석하면 문제가 단순해진다”고 언급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홈플러스나 발란 같은 미정산 사태는 전형적인 재무 관리 문제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정산 대금의 소유권을 잘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서는 플랫폼이 판매 대금을 소유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이다. 강 교수는 소상공인들이 판매 대금의 소유권을 갖게 되면 처벌도 어렵고 관리도 어렵지만, 플랫폼이 정산 대금을 소유하면 관리도 쉽고 처벌 근거도 명확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계 장부나 재무 현황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강 교수는 재무 위험을 분석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홈플러스나 쿠팡, 컬리 등을 분석했다. 지표를 분석하면, 현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기업을 확인할 수 있고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파산 가능성을 사전에 진단하기 쉽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어느 한 지표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수익성·유동성·자산 회전율 등 다양한 재무 지표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파산이나 부도 위기가 있는 기업은 일관된 부실 신호를 나타내므로, 이러한 위험 신호가 보이는 기업을 집중 관리하면 관리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의견이다.

이날 세미나 마무리에는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최정혜 교수,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이정환 교수,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정주연 전문위원이 토론을 했으며, 단국대학교 경영학부 정연승 교수가 발언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 명은 공통적으로 정산 기한 단축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점을 언급했다.

발언 시간에서 정주연 전문 위원은 스타트업이나 중소 플랫폼에게 진입 장벽이 되는 정산 기한 단축 정책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미정산 사태 같은 유사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부분에는 동의하지만, 일부 사업자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로 인한 문제를 산업 전체에 일률적인 규제를 적용하는 것에 의문”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정연승 교수는 “우리 토종 플랫폼의 입지가 점점 더 힘들고 경쟁이 힘든 상황에서 이런 규제 정책이 과연 토종 플랫폼들 또는 스타트업들에게 플러스가 될 것이나 마이너스가 될 것인가”라며, “명확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그 자리를 결국은 미국이나 중국 플랫폼들이 차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우리 플랫폼 생태계에서 앞으로 어떻게 나갈 것인가,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 여기에 포커스가 맞춰줘야 한다”는 발언으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가람 기자> ggchoi@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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