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쿠팡 시총 100조원의 교훈
쿠팡의 주식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첫날 거래를 마쳤다. 이날 종가는 공모가보다 40.71% 오른 가격이었다. 향후 주가가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첫날 종가 기준으로 쿠팡의 시가총액은 100조원을 돌파했다. 한국 주식시장으로 치면 삼성전자 다음으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2인자 SK하이닉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치다.
쿠팡이 이정도까지 성공할 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뉴욕거래소에 화려하게 입성한 쿠팡을 통해 우리는 적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한국 시장이 작지만은 않다
어렸을 때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이상했던 장면이 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각 나라가 깃발을 들고 입장하면서 그 나라의 국토면적이나 인구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데우리나라보다 큰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땅도 좁고 인구도 적은 ‘작은 나라’라는 걸 당연시 했는데 그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보다 규모가 큰 나라의 상당수는 우리보다 가난해 보이는 나라였다. 영국, 프랑스처럼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규모는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남북한을 합치면 우리나라 인구가 이들보다 많았다. 우리나라가 정말 작은 나라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상장 이후 “한국 시장은 결코 작지 않다”면서 “당분간은 한국시장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쿠팡의 초기 투자자인 알토스벤처스 한킴 대표도 항상 “한국 시장은 작지 않다”고 말해왔다.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은 시장이 작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킴 대표의 분석이었다.
이와 같은 장면은 배달의민족이 매각될 때도 볼 수 있었다. 배달의민족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는 한국의 배달앱 업체를 왜 인수했는지 주주들에게 설명하면서 로컬 비즈니스 측면에서 한국시장은 미국시장과 비슷한 규모라고 분석했다.
한국시장을 타깃한 기업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거나 무조건 해외진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틀릴 수도 있음을 쿠팡이 보여준다.
- 스타트업이 더 유리하다
예전에 한 스타트업 대표의 강연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자본력 면에서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유리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아이디어나 민첩성 면에서 우수하고 대기업은 자본력 면에서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자본력도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앞선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의 경우 특정 부서에서 추진하는 신사업에 배정되는 예산이 한정돼 있지만, 스타트업의 경우 지속적인 외부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대기업의 신사업은 빠른 시일 내에 재무적 성과를 보여야 하지만, 스타트업은 월간사용자수(MAU)나 거래액 등 비즈니스 지표가 좋으면 계속해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쿠팡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롯데나 신세계가 쿠팡보다 가진 돈이 적지는 않지만, 쿠팡은 10년 넘게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도 거래액과 매출이 급성장 하는 이상 계속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쿠팡의 누적적자는 4조5000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대기업 재무팀은 10년 이상 대규모 적자를 일으키는 신사업 부서에 계속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다.
흔히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싸우면 불리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오히려 스타트업이 더 유리할 수 있음을 쿠팡이 보여준다. 이제 쿠팡의 시가총액은 신세계와 이마트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20배, 롯데쇼핑보다 27배가 넘는다.
- 거인의 어깨에 서서 보라
아이작 뉴턴은 자신의 과학적 성취에 대해 “거인의 어깨에 서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성취는 처음부터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로버트 훅 등 선배 과학자들의 성취 위에 조금 더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금언을 쿠팡에도 적용할 수 있을 듯 보인다. 쿠팡은 ‘아마존’이라는 거인의 어깨에서 비즈니스 세계를 바라봤다. 누군가는 아마존 흉내내기라는 비아냥을 보내기도 했지만, 쿠팡은 아마존의 성취를 그대로 재현하고 거기에 자신만의 성취를 더했다. 아마존이 배송 고객경험을 위해 물류에 대대적으로 투자해서 성공하는 것을 봤지만 국내 다른 이커머스 기업들은 그길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쿠팡은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면서 아마존의 길을 갔다. 국내 최초로 아마존웹서비스(AWS) 기반으로 모든 IT시스템을 옮긴 것도 거인의 어깨 위에 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그림의 전체를 보자
인상 깊게 본 광고가 하나 있다. 선생님이 그림을 그리라고 하자 한 아이가 스케치북 가득 검정색만 칠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여러 장의 스케치북에 계속 검정색만 칠했다. 이 모습을 본 어른들은 이 아이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다. 그러나 이 아이가 그린 것은 엄청나게 거대한 고래였다. 어른들은 아이의 그림 전체를 상상하지 못하고 스케치북 한장만 보면서 걱정을 한 것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언론과 비즈니스 분석가들은 쿠팡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내렸다.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할 것으로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쿠팡은 자신들의 적자규모에 대해 별로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심지어 “계획된 적자”라고 표현했다. “적자를 계획하다니 미친 거 아닌가”라는 비웃음도 나왔다.
쿠팡은 이번 상장으로 5조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했다. 산술적으로는 현재 수준의 적자를 10년 더 계획해도 된다는 의미다. 쿠팡은 10년전부터 거대한 고래를 그리고 있었고, 언론과 분석가들은 스케치북 한장만 보고 있었던 셈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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