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가 말하는 실리콘밸리의 변화

지난 20여년간 실리콘밸리 문화를 상징하는 기업은 ‘구글’이었다. 구글의 성공 이후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은 구글의 기업문화를 따라했다. 빈백(Bean Bag)에 눕다시피 앉아 노트북 컴퓨터를 두드리는 모습,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다양한 음식을 편히 먹는 모습, 근무시간인데 탁구를 치거나 배구를 하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겉으로 볼 때는 회사인지 동호회인지 불분명하고, 근무시간인지 휴식시간인지 알기 어려운 것이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모습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이런 기업문화는 국내에도 영향을 미쳐 많은 국내 스타트텁이 유사한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뉴욕타임즈>는 이런 실리콘밸리의 문화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뉴욕타임즈는> 3일 ‘실리콘밸리의 하드테크 시대’라는 기사를 통해 새로운 실리콘밸리의 모습을 소개했다.

우선 신문은 페이스북,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웹 2.0’ 시대를 주도하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나 소셜 네트워크 같은 소비자용 앱을 만드는 데 집중했지만, ‘하드테크’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분위기는 훨씬 진지해졌고, 복지는 줄어들었으며, 기술 자체는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소프트’에서 ‘하드’로, 중심지 이동

이전 실리콘밸리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였다. 어떤 아이디어로 어떤 앱을 만들었냐가 중요한 성공요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AI 프로그램을 돌리는 데 필수적인 고성능 그래픽카드(H100)를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주요 화제가 됐다. ‘신경망’, ‘대규모 언어 모델’ 같은 용어는 이제 실리콘밸리 종사자라면 필수로 알아야 하는 기본 지식이 됐다.

‘쉬운’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던 시대는 끝났다. 벤처 투자가인 실 모놋은 “이전의 소비자 중심 소프트웨어 사업은 만들기 쉬웠고 돈을 찍어내듯 벌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술의 중심지도 옮겨갔다. 과거 실리콘밸리를 상징했던 산호세, 마운틴뷰, 팔로알토에서 북쪽으로 40마일 떨어진 샌프란시스코로 중심이 이동했다. 오픈AI와 앤스로픽 같은 AI 스타트업들이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다. 구글처럼 대규모 채용을 하던 시절은 끝났고, 기업들은 군살을 빼기 위해 직원들을 냉정하게 평가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던 인력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오픈AI의 급부상 이후, ‘실리콘 해변(마이애미)’이나 ‘실리콘 언덕(오스틴)’ 같은 지역 대신 다시 베이 에어리어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AI 산업은 클라우드에 있지만, 사람들은 직접 만나 아이디어를 교환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제 ‘더 아레나(The Arena)’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창업자들이 AI의 주도권을 놓고 투쟁하는 전장이 됐다는 뜻이다.

정치 성향과 투자 분야의 변화

뉴욕타임즈는 실리콘밸리의 정치적 성향도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과거 실리콘밸리는 ‘리버럴’ 성향이 강했다. 리버럴은 낙태나 소수자 권리 보호 등 개인의 사회적 자유를 강조하는 반면 복지나 규제 등 정부의 역할도 중요시 여기는 특징이 있다. 대체로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이 리버럴 성향이다.

뉴욕타임즈는 현재 실리콘밸리의 정치성향을 ‘리버럴테리언’이라고 규정했다. 리버럴과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의 합성어다. 리버테리언은 정부역할 최소화, 시장의 자유나 사회적 자유를 극단적으로 추구한다는 이념이다.

실리콘밸리가 리버럴테리언이라는 의미는 기존의 리버럴 가치와 정부 역할 최소화 성향이 공존한다는 의미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빅테크 규제가 심해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한때 금기시되던 국방 및 무기 개발 산업이 유망한 투자 분야로 떠오른 것도 이런 변화의 한 단면이라고 신문은 소개했다. ‘정치적 올바름(PC주의)’의 영향으로 이런 산업에 기술을 공급하는 것을 실리콘밸리 종사자들은 부정적으로 여겼었다.

그 결과 10년 전에는 결제 시스템 같은 것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흥했었는데 이제는 AI 유도 크루즈 미사일, 무인 항공 드론 등을 만드는 신생기업이 등장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실리콘밸리는) HBO 드라마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마운틴헤드’에 더 가까워졌다”고 평했다.

드라마 ‘실리콘밸리’는 2010년대초 소비자용 앱을 만들던 다소 철없는 창업자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며, 영화 ‘마운틴헤드’는 AI 딥페이크 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전 세계적인 혼란과 경제적 붕괴를 지켜보는 억만장자들의 이야기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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