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AI 혁신을 이끌 부처는 과기부가 아니다

“베트남에 쌀 많으니 한국서 벼농사 지을 필요 없다는 얘기랑 똑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일 울산의 AI데이터센터 출범식에서 했다는 말이다. ‘소버린 AI’ 반대론에 대한 대통령의 일갈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AI 국가 경쟁력 확보를 공약했고, 민관에서 100조원의 투자를 일으키겠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반박한 ‘소버린 AI 반대론’은, 자세히 들어보면 소버린 AI가 필요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자본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여건상 경쟁력 있는 AI를 만드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론’의 다른 표현이다. 현실론자들은 파운데이션 모델 같은 분야에서는 사실상 경쟁우위를 갖기 어려우니 차라리 제조 AI 등 응용 기술쪽에 국가적 역량을 투자하는 것이 더 전략적이라고 생각한다.

IT 업계에서는 특히나 정부 주도의 AI 개발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인다. 지금까지 IT 업계에 존재해 온 수많은 한국형 ○○○의 실패 경험이 이런 냉소적 태도의 배경이다. 신기술이 뜨면 역대 거의 모든 정부는 한국형 ○○○을 만들겠다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많은 한국형 ○○○ 중에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사례는 기억해 내기 힘들다.

이런 소버린 AI 회의론자들을 향한 정부의 메시지는 “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아니라 “어떻게”가 포함된 방법론이어야 한다. 자본도 부족하고 성공 경험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가능하다”는 청사진을 제시해줘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접근법은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부정론과 냉소론은 사라질 것이다.

아직까지는 새 정부도 크게 다른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최근 과기정통부는 글로벌 AI 95% 수준의 AI 모델을 만들어 배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업은 ‘월드 베스트 LLM’ 이라는 이름으로 전 정부부터 추진해온 것을 새 정부 정책기조에 맞게 새롭게 포장한 것이다.

이 사업은 글로벌 수준의 범용 AI 모델을 자체 개발할 수 있는 총 5개 정예팀을 선발해, 3년간 총 1936억원 규모의 GPU, 데이터, 인재를 집중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림 계산해 보면 한 회사에 400억원이 조금 못 되는 지원이 이뤄지게 된다. 과연 이 400억원은 “월드 베스트” AI 모델을 만들어 내는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참고로 챗GPT 한달 운영비가 한 400억원 정도 들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괜찮은 기업을 선별해 자금을 지원한다’는 방법론은 IT 업계에서 성공사례가 별로 없다. 물론 자금을 지원받은 회사 입장에서는 지원금으로 직원 월급도 주고 잘 운영을 하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월드 베스트가 된다거나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최악의 경우 좀비 기업만 양산하는 시장 왜곡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지원’이라는 방법론은 IT 업계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정부가 ‘지원’보다는 ‘좋은 고객’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훨씬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최고의 제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의지와 최고의 제품을 선별할 역량이 있다면 시장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낸다. 싫어하는 이들도 많지만 한글과컴퓨터의 ‘한글’은 정부의 활용 덕분에 좋은 제품이 되었다. 물론 표준이나 파일포맷의 호환성 문제로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로서 ‘한글’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비해 기능이 부족하다거나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공무원이 요구하는 기능, 예를 들어 표안에 표넣기 등 특수 기능은 ‘한글’이 더 편하다.

AI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부가 스스로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AI 요구사항을 잘 정의하고 시장에 그와 같은 AI 공급을 요청하는 것이다. 정부에 LLM을 공급하기 위해 업계는 경쟁할 것이고, 정부는 그 중에 가장 뛰어난 기술을 구매해서 사용하면 된다.

이런 그림이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유능해야 한다. 최고의 AI 인재가 구매자로 있어야 정부 혁신을 위해 필요한 AI 요구사항을 정의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업계와 협의하면서 최고의 LLM을 함께 만들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AI에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처는 과기부나 중소벤처부가 아니라 행안부다. 기술 구매자로서 행안부의 역량이 중요하다. 행안부는 정부의 CIO(최고정보화책임자) 역할을 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원래 IT 산업은 고객이 혁신을 이끌었다. 나사(NASA)와 펜타곤이 반도체의 구매자가 아니었다면 반도체 산업은 태동조차 못했을 수도 있다. 최근 미장(미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각광을 받은 팔란티어 같은 회사를 성장시킨 건, 미국 정부다. IBM이나 오라클도 마찬가지다.

AI 기업을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를 고민하기에 앞서, 정부가 AI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이 더 중요하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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