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추운 겨울 온다… 버틸 수 있게 자구책 세워라”

스타트업이 성장,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안착하려면 세 다리가 받쳐줘야 한다. 인재와 돈, 시장이다.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할 능력자, 이 능력자를 고용하고 회사를 키워갈 돈, 능력자가 만든 제품을 사갈 시장이 있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없으면 회사는 고전하거나, 혹은 망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흔했던 것은 돈이다. 비즈니스 모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회사에도 “점유율을 높이면 자연스레 시장도 생길 것이니 어서 빨리 덩치를 키우라”는 주문이 있었다. 돈이 넘쳤고, 꽤 많은 스타트업이 가치를 높이 평가 받아 큰 투자를 받고 영향력을 키우는데 집중했다. 국내에서도 스물세개나 되는 회사가 1조원 이상 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 대열에 올랐다.

그런데 그 돈이 씨가 말랐다. 다음 단계로 레벨업을 하려고 자금유치에 나섰던 스타트업들이 시장의 차가운 반응에 고전한다. 미디어에서는 이를 “겨울이 왔다”고 표현한다. 9일 서울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에서 막을 올린 스타트업 축제 ‘컴업 2022’에서도 ‘스타트업의 겨울’이 집중 조명됐다. 컴업은 그간 정부 주도 행사로 열려왔으나 올해부터 운영  주체가 민간으로 이양됐다.

민간주도로 처음 열리는 컴업은 스타트업 이익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주최를 맡았다. 박재욱 쏘카 대표가 의장이다. 박 의장은 컴업 개막식 직후 열린 대담에서 이영 장관과 만나 스타트업이 지금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토로했다. 그는 “과거에는 비용을 써서라도 성장을 해야 하는 것이 성공의 방정식 같았다면, 이제는 그보다 실질적으로 비즈니스모델이 동작하게 만들어서 수익을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투자 혹한기와 관련해서 스타트업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듣고 싶다.

박재욱 쏘카 대표(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경제 상황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했다. 금리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면서 과거에 소위 말하던 ‘유동성 파티’가 끝나고 있다. 높이 올라갔던 만큼 떨어지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게 느껴지고 있다. 올해 상장을 하면서 자본 시장에 가까이 있다보니 그걸 더 체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 조달이 힘들어지는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박재욱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쏘카 대표)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문제는 얼마만큼 투자 한파가 오래 갈 것이냐에 달려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컴업에 참여한 연사들은 부정적 의견을 냈다. 박재욱 의장은 그는 “경기 침체가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성장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지, 생존을 통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지를 바라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창업자 출신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겪고 있는 겨울을 말했다면, 투자자 입장에서 앞으로 더 어려운 시간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종훈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대표도 CVC 전략을 설명하는 세션에 참석, “아직 진짜 겨울은 오지도 않았다”고 경고했다.

이종훈 대표는 지금의 투자 한파가 “유동성, 고금리, 경기 침체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스타트업도 피해갈 순 없다”면서 “이런 요인들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극복할 수 없는 글로벌한 트렌드이고 진짜 겨울은 아직 오지도 않은 상황인 것 같아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겨울을 넘기는 방안에 대해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대표는 “넷플릭스가 사업 모델 개발과 인재 밀도를 높이는 방식의 구조조정을 통해 오늘날의 넷플릭스가 되었듯, 스타트업은 지금 위기를 조직을 다시 살펴보고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로 보라”고 말했고 투자자들에 대해서는 “시장이 장기 게임에 접어든 만큼 꾸준히 투자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고 의견을 보탰다.

박재욱 대표도 스타트업 대표 중 한 사람으로서 기업가의 역할을 언급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수익 모델을 만들어서 스스로 지속가능한 기업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육성으로 듣자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즈니스의 본질이 명확하고, 누가 보더라도 좋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서 지속가능하게 성장가능한 부분이라면 투자하는 이들도 지갑을 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영 장관은 투자 혹한기에 정부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 했다. 이 장관은 민간 벤처투자사로부터 투자 받는 스타트업은 전체의 2%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스타트업이 스스로 투자 받을 수 있는 상태로 성장할 수 있기까지 정부의 ‘브릿지 펀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장관은 “스타트업이 VC로부터 투자를 받고 유니콘이 될 때까지 정책 펀드에서 지원을 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면서 “금융권과 함께 스타트업의 생존을 위한 브릿지 자금 전략을 지금 만들어가고 있고, 50조원 규모의 금융 지원 정책을 올 연말께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 장관에 따르면 이 지원책 안에는 융자나 보증 등의 방안이 포함될 예정이다.

이 외에 당장 시장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즉 수익 모델을 만들기는 어려운 딥테크 기업들에 대한 지원책을 설명하기도 했다. 딥테크 부문에는 대체로 선행기술이라 연구개발이 꼭 필요하지만 당장 시장에서 기술을 팔기에는 어려운 곳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장관은 “‘초격차 펀드’라는 이름으로 딥테크 열 개 분야를 정했고, 5년 동안 2조원의 금액을 연구개발과 사업화 자금만으로 지원을 드리겠다고 발표했다”며 “그중에서도 조금 더 빠르게 스케일업 단계에 진입하는 기업은 모태펀드에서 또 다시 투자를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기술력이 있는 기업이라면 외롭지 않게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장관의 발언에 박재욱 대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좋은 기업도 민간에서 투자 받거나 생존하기 어려운 일이 분명히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혹한기를 지난 이후에 더욱더 날개를 펼 수 있는 그런 회사가 있다면 정책적인 지원이나 브릿지론 등을 통해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으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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