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물류’로 그리는 큰 그림

#1 도시철도법 제2조(정의)에 따르면 도시철도운송사업이란 도시철도시설을 이용한 여객 및 화물 운송 사업을 포함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지하철은 예부터 법적으로 ‘물류’ 용도로 쓸 수 있었다.

#2 2017년 두 개의 서울 지하철 운영사,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합병했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서 ‘서울교통공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게 됐다. 합병 기업의 이름에는 지하철(메트로, 도시철도)이 빠졌다. ‘교통(Transportation)’이 새롭게 들어갔다.

#3 잘 안 알려졌지만 서울교통공사의 출범과 함께 만들어진 조직이 있으니 물류사업TF다. 카카오T의 T가 택시(Taxi)가 아닌 교통(Transportation)인 것처럼. 서울교통공사는 여객운송을 넘어선 무엇인가를 준비했으니 ‘물류’다. 합병 시점 처음으로 서울교통공사에 물류팀이 만들어졌다. 이 팀이 TF 이름을 벗고 물류사업팀으로 승격한 것이 2018년 1월이다.

#4 2019년 12월, 서울교통공사로부터 한 통의 보도자료가 도착했다. “서울 지하철, 이제 물건도 실어 나른다… 물류비용 절감”이라는 제목이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서울교통공사의 물류가 드디어 수면 위로 올랐다.

배경 설명 끝났으니 오늘 이야기를 시작한다. 갑자기 튀어나온 ‘지하철 물류’,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로 어떻게 물류를 하고, 효율을 만들겠다는 것일까.

현시점의 핵심 인프라

물류팀 발족 이후 2년 동안 서울교통공사가 준비한 것이 있다면 ‘인프라’다. 지하철로 물류를 할 수 있다는 도시철도법의 정의와는 다르게, 한국의 지하철은 확실히 ‘사람’을 위해 설계됐다. 물류 인프라는 아예 없거나 부족했다. 서울교통공사는 그간 부족했던 물류 인프라를 도시철도 시설에 깔았다. 현시점 서울교통공사의 양대 물류 인프라가 있으니 ‘무인보관함’과 ‘유인보관소’다.

첫 번째 인프라 무인보관함을 소개한다. 2년 전에 ‘무인보관함’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5~8호선 지하철에 서울교통공사가 직영하던 무인보관함이 있었다. 이를 서울지하철 1~9호선 전체 라인으로 확장했다. 무인보관함 업체에 용역을 줘 위탁관리를 맡겼던 방식도 내재화했다. 이제 무인보관함 관련 솔루션 개발부터 고객 관리까지 모두 서울교통공사가 수행한다. 그렇게 서울 지하철 전역에 설치된 무인보관함이 총 5540여개다.

두 번째 인프라는 ‘유인보관소’다. 서울교통공사는 2019년 11월 홍대입구역에 첫 번째 유인보관소를 설치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생각보다 지하철 안에는 유휴공간이 많다. 서울교통공사는 임대가 되지 않아 비어있는 상점 공간, 빈 역무실을 활용해서 물류 거점을 만들었다.

서울교통공사는 향후 현재 홍대입구역 한 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유인 보관소’를 외국인 관광 수요가 많은 역사를 중심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서울역, 명동역, 김포공항역이 현시점 입점 확정 역사다. 잠실역과 강남역이 유인 보관소 입지 예정 지역으로 점쳐진다. 10~15개 역마다 하나의 유인보관소가 추가로 배치된다.

지하철의 유휴공간이 물류 거점으로 변신하고 있다. 사진은 홍대입구역에 입지한 서울교통공사의 1호 유인보관소.

장경호 서울교통공사 물류사업팀장은 “지하철은 사실 여객과 화물을 함께 취급할 수 있지만, 생긴 이례 40년 동안 모든 인프라를 여객 서비스를 중심으로 구축해왔다. 그러다보니 물류를 할 수 있는 기능은 전혀 없던 상태였다”며 “최근 들어 서울교통공사는 무인보관함을 직영화 했고, 지하철에는 유인보관소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현시점의 물류 ‘수하물 운송’

서울교통공사가 현시점 구축한 두 가지 인프라를 통해 하고 있는 대표 물류사업은 ‘수하물 운송’이다. 홍대입구역 유인보관소를 기점으로 관광객의 수하물을 보관해주거나 공항까지 운송해주는 서비스 ‘T러기지’를 운영한다. 보관비용은 4시간 기준 3000원, 운송비용은 소형 화물 기준으로 1만8000원이다. 민간기업과 비교해서 40% 수준의 저렴한 요금이 서울교통공사가 내세우는 차별점이다.

홍대입구역 2호선과 공항철도를 연결하는 통로에 서울교통공사의 유인보관소가 입지했다. 기자가 오후 2시경 방문한 T러기지에는 누군가 보관한 수하물로 가득했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 이용한다는 서울교통공사측 설명이다.

예측했겠지만 T러기지의 주고객은 외국인 관광객이다. 유인 보관소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역사에 우선 입지한 이유다. 장 팀장은 “통상 한국 호텔의 체크아웃 시간이 오전 11시인데, 귀국 비행기가 저녁인 관광객들은 중간에 비는 시간이 있다”며 “이 때 짐을 들고 다니기엔 굉장히 번거로운데, 이 때 유인보관소에 잠깐 짐을 보관한다. 현장 직원이 짐을 보관하는 외국인들에게는 공항까지 배송이 필요한지 묻는데, 희망한다면 공항까지 배송 서비스까지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T러기지가 제공하는 공항까지의 운송은 택배업체와 협업한다. 1톤 택배차량이 14시 30분에 맞춰 홍대입구역으로 오는데, 그때까지 모인 고객 수하물을 트럭에 실어 인천공항으로 보낸다. 그렇게 공항까지 이동한 수하물은 인천공항 1터미널과 2터미널 내부에 있는 택배업체가 보유한 공간에 잠시 보관된다. 출국 시간에 맞춰 인천공항에 도착한 고객들이 해당 수하물을 찾아가면 된다.

장 팀장은 “지난해 11월 11일 T러기지 사업을 시작했는데 두 달도 안 돼서 하루 평균 140건 정도의 보관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배송까지 연계한 서비스는 하루 15건 정도 수행한다”며 “매달 수치는 10%씩 증가하고 있는데 아무런 마케팅도 진행하지 않고 빠르게 수요가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는 3월 무인보관함의 문을 개폐할 수 있는 형태의 모바일앱을 론칭한다. 이 시점에 맞춰서 현재 아웃바운드(공항향)만 가능한 수하물 운송 서비스를 인바운드(공항발)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 때 T러기지를 알리는 대대적인 홍보가 진행될 계획이다. 서비스 타깃 또한 외국인 관광객에서 한국인으로까지 확장한다.

장 팀장은 “시스템 개발이 끝나면 단순히 외국인만 이용하는 서비스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예를 들어서 출장을 나간 직장인이 아침이나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때 자택에 들려 짐을 보관하고 다시 회사로 출근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닌데, 김포공항에 있는 무인보관함에 수하물을 맡기면 퇴근 시간에 자택 근처 지하철 무인보관함에서 짐을 찾아갈 수 있는 서비스가 만들어질 것”이라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판 ‘지하철퀵’ 가동

이 때 의문이 있다면 누가, 어떻게 무인보관함에 보관된 화물을 목적지까지 옮기냐는 것이다. 여기에 쓰이는 것이 서울교통공사의 실버택배 네트워크다. 서울교통공사는 현재 총 13명의 노인 인력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추천을 받아 고용해서 안국역 한옥마을 인근 상점의 라스트마일 물류를 테스트하고 있다. 이들은 무인보관함에 오랫동안 보관된 물건들을 빼서 수거하는 ‘경과품 관리’ 업무를 맡기도 한다.

서울교통공사는 당장 3월에 그렇게 확충한 인력을 통해 ‘지하철 퀵서비스’ 사업을 론칭한다는 계획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이미 서울 지하철 전역에 깔아놓은 무인보관함이 고객이 배송할 상품을 임시 보관하는 픽업 거점이 된다. 그렇게 모인 상품을 서울교통공사가 확보한 인력들이 픽업하여 지역 ‘유인보관소’에 집하한다. 집하된 상품들을 모아서 한 번에 최종 고객에게 배송하는 개념이다. 개념은 택배의 ‘허브앤스포크’와 같다. 말단의 픽업 거점을 ‘무인보관함’이, 지역 서브터미널의 역할을 ‘유인보관소’가 하게 된다. 배송기사의 운송수단은 ‘지하철’이다. 이 때가 되면 60명 정도 되는 인력이 한 번에 들어올 것이라는 서울교통공사의 전망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배송인력을 서울시가 제시하는 2020년 생활임금에 맞춰서 채용한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1만523원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채용하고자 하는 것은 노인뿐만 아니다. 경력단절여성, 발달장애인 등 고용 취약자들을 적극 고용한다는 게 서울교통공사측 설명이다. 확실히 서울교통공사가 고용하는 지하철 퀵서비스 기사는 기존 건당 임금을 지급 받는 사설 지하철 퀵서비스 기사에 비해서 높은 임금 환경을 보장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장 팀장은 “실버 인력의 특성이 있는데 풀타임 근무를 하는 것은 꺼려하고, 소일거리로 하루 4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선호해서 시급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왜 우리가 이런 짓(높은 시급으로 인력을 채용하는 것)을 하냐고 이야기가 나올 수가 있는데 우리는 공공기관이다. 정부나 시의 정책에 맞춰서 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동시에 근로 취약 계층이 문제없이 생활하고 세금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건전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하철 퀵서비스는 이미 돌고 있는 지하철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교통량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파트타임까지 합치면 120명 정도 되는 인력이 고용될 것”이라 밝혔다.

진짜 큰 그림은 ‘차량기지’에

서울교통공사가 크게 ‘무인보관함’과 ‘유인보관소’, 두 가지 물류 인프라를 확충했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그 두 가지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서 수하물 보관 및 배송사업, 나아가 지하철 퀵서비스를 하려고 한다.

앞서 밝히지 않은 또 다른 핵심 인프라가 있으니 서울교통공사가 가지고 있는 ‘차량기지’다. 이 안에서 놀고 있는 유휴공간만 도합 43만평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올해 이 공간을 3000평 규모의 상품 분류 거점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차량기지의 유휴 공간은 법적으로 ‘물류’ 활용이 불가능한 자리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개발제한구역 내 차량기지에 물류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이 공간을 활용한 물류가 가능해졌다. 물론 현시점 차량기지는 ‘분류장’ 용도로만 사용 가능하다. 택배업체의 허브터미널처럼 자동화 설비를 비치하는 것은 여전히 법으로 금지돼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런 상황을 경제성을 증명하는 R&D를 통해 단계적으로 극복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장 팀장은 “현시점 개정된 법령으로 차량기지의 유휴공간은 간이 천막이나 가건물을 설치한 화물 분류장 정도로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하나하나 경제성을 증명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나갈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차량기지는 단계적으로 택배업체의 서브터미널, 더 나아가 허브터미널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도록 할 것”이라 밝혔다.

조금 먼 시점이지만 서울교통공사는 하나하나 지하철을 활용한 R&D를 진행하면서 2024년까지 3000량 가까이 되는 폐열차를 10개 차량기지를 오가는 간선차량처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 말인즉 서울교통공사가 차량기지의 대형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물류의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수하물 운송, 퀵서비스와 같은 C2C 물류뿐만 아니라 진짜 거대한 물류를 할 수 있게 된다. 서울에 인접한 도심물류창고를 찾는 유통, 물류업체들이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고객사가 될 것이라는 공사측 전망이다.

장 팀장은 “당장 서울 안에 물류시설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와중 유일하게 남은 땅이 우리들의 차량기지”라며 “조만간 물류 대란은 일어나게 돼 있다. 이커머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택배가 동반 성장하는데 그것을 감당할 물류 인프라가 없고, 구축할 곳도 적합하지 않다. 그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지하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죽어가는 차량기지는 물류로 부활한다. 수명을 다한 열차는 물류를 통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서울교통공사가 생각 하는 물류의 큰 그림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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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지하철 운행이 종료되는 심야에 5호선 방화기지에 있는 모 택배사 수도권남부 허브가 화물을 분류하여 간선지하철(?) 7호선 도봉기지에 있는 수도권 북부허브로 물량을 이동시켜 대리점으로 배송후 출고시키는 시스템이 실현될까요?
    예시지만 터미널 인프라가 없는 중소 라스트마일업체나 중소 화주사들이 이용하면 좋은 시스템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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