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 ‘창업하라’고 부추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걸고 싶다. 국회가 일을 안 하고 있는데, 내가 들어가서 바꿔볼 생각도 든다.”

제주에서 ‘빈집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스타트업 다자요는 지난 여름 규제 때문에 사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농어촌 빈집을 장기 임대해 리모델링한 후 숙박을 제공하는 사업이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 민박을 치는 것이 농어촌정비법을 어긴다고 농림부가 위법 딱지를 붙였다. 제재 받기 전 다자요는 꽤 유망한 스타트업으로 분류됐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의 빈집 문제를 덜어줄 참신한 아이디어라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관광 중소기업 크라우드펀딩 지원사업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남성준 다자요 대표가 19일 제주더큰내일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걸고싶다”고 토로한 이유다. 남 대표는, 제주스타트업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날 간담회는 ‘앞으로 10년, 제주는 무엇을 해야하나’를 주제로 열렸다. 도내에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이 모여 올해 아쉬웠던 점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공유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모더레이터는 윤형준 제주패스 대표가 맡았다. 토론에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태성길 제주테크노파크 원장, 전정환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김종현 제주더큰내일센터장, 남성준 협회장,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등이 참여했다.

왼쪽부터 김종현 제주더큰내일센터장,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남성준 제주스타트업협회장(다자요 대표), 윤형준 제주패스 대표, 원희룡 제주도지사, 태성길 제주테크노파크 원장, 전정환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간담회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됐다. 하나는 규제 해소, 또 다른 하나는 인재 육성을 통한 지역 창업 생태계 확장이다. 다자요 규제 이슈가 토론의 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정부가 규제를 없애주고 혁신 모델을 개발해서 창업하라고 청년 기업가의 등을 떠밀고 있는데, 막상 실제로 창업을 하게 되면 부딪히는 법적인 문제와 이슈가 있다.” 남성준 다자요 대표

올해 규제로 사업을 중단하거나,  혹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스타트업이 여럿이다. 타다도 국토부와 갈등을 빚고 있고 주류 배송 사업을 하던 벨루가는 규제에 막혀 사업 모델을 변경했다. 다자요의 경우도 마찬가지 케이스다. 세 기업 모두 법을 위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 기존 산업과 갈등을 빚었고, 주무부처는 스타트업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남 대표가 “내가 국회에 들어가볼까도 생각했다”는 말은, 입으로만 ‘스타트업 육성’을 말하는 정치권에 대한 답답함을 반영한 것이다.

물론 정치권도 이같은 목소리를 안다. 그렇지만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원희룡 지사는 “나름대로 제주의 히트 상품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를 개발해 놓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농어촌 민박 게스트하우스는 되고 더 혁신적인 숙박 서비스는 안 되는게 너무 황당하다”고 겸연쩍어 하면서도, “FTA가 체결되면서 농민들의 생존권과 부딪혔을 때 상생기금 1조원을 만들어서 밀어붙였는데, 미래의 스타트업에는 해법을 기업에 내라고 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최성진 대표도 발언을 위해 제주를 찾았다. 최 대표는 올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질적인 성장을 한 것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규제 이슈가 발목을 잡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난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혁신 간담회르 통해 대국민 발표를 하면서 ‘신사업과 기존 산업이 충돌할 경우 반드시 국민 전체의 이익으로 판단하라’고 했다”면서 “빈집을 재생하고 농어촌 소득을 높여주고 도시 문제를 해결할 다자요 모델도 국민 전체의 이득으로 봤을 때 무엇이 더 좋은지 생각하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정부의 해결 노력을 촉구했다.

제주의 미래를 위한 인재 육성 필요와 관련해서는 도내 대표적인 창업 지원 기관인 제주더큰내일센터,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제주테크노파크 등에서 발언했다. 제주도에도 단계적 창업과 인재 육성을 위한 기관들이 만들어지고, 이들 간 연계가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지역 내 청년들에게 취업과 창업을 위한 교육을 시키는 곳이 올해 개관한 제주더큰내일센터라면,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하고 투자를 알선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검증된 스타트업은 테크노파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김종현 더큰내일센터장은 “제주에 청년이 없다”는 인식을 없애는게 우선이라고 언급했다. 센터는 지난 10월부터 도내 청년 100명에 교육훈련 수당과 프로젝트 추진비를 150만원씩 지급하면서 지속적인 진로 탐색을 할 수 있게 하는 ‘TAM-NA’ 프로젝트를 실행 중이다. 사업 초기, 주변에서 제주에 청년이 어디 있다고 100명을 뽑냐고 우려했지만, 결과적으로 500명의 청년이 사업 설명을 듣고 200명이 지원해 최종 100명을 선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 센터장은 “시작 두 달 만에 제주센터를 벤치마킹하려는 사례가 있어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본다”면서 “최근에는 이 청년들이 갈 기업이 제주에 있냐는 우려가 있는데 이 청년들과 지역의 기업이 만나서 미래를 만드는 걸 잘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전정환 제주창조제혁신센터장은 올해 도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창업 단계별 지원 기관이 생겨나면서 생태계가 견고하게 만들어진 것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또, 센터가 카카오의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앞으로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카카오의 자회사인 카카오프렌즈나 카카오메이커스 등과 연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미팅을 주선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도가 내년 ‘블록체인 특구’로 서정될 경우, 카카오의 그라운드 엑스와도 협업이 가능할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스타트업의 성장에서 글로벌 진출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태성길 제주테크노파크 원장은 “시장을 이해할 수 있는 마케팅 분야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제주도 내의 인바운드가 아니라 글로벌로 나갈 수 있는 마인드, 기업가 정신을 제고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