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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망한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가 ‘기회’가 된 이유

서울전역 5000원 단일가 퀵서비스로 화제를 몰고 온 ‘원더스’라는 기업이 있다. 원더스의 성장은 빨랐다. 창업 2년만에 동훈인베스트먼트, 케이큐브벤처스(현 카카오벤처스),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누적투자 76억원을 유치했다. 지난해 5월에는 한진의 당일택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로 선정됐다. 같은달 렌즈배송업체 ‘바른배송’을 인수하며 옵티컬 사업 진입을 선언했다. 원더스를 이용하는 고객사는 2000개를 돌파했다.

5000원 단일가는 ‘운영’을 통해 만들어진다. 원더스는 국내 택배업체들이 전국단위에서 운영하는 허브앤스포크를 ‘서울지역’에서 축소하여 운영했다. 원더스의 배송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퀵서비스 기사들이 서울 각지 고객주문들을 픽업(집하)해 용산에 있는 허브 물류센터에 모은다. 허브 물류센터에 모인 화물은 지역별로 분류된다. 퀵서비스 기사들은 그렇게 분류된 화물 여러 개를 들고 순회 배송한다. [참고 콘텐츠: 서울전역 5000원 퀵서비스, 그게 말이돼?]

여타 퀵서비스 업체가 하나의 상품을 픽업해서 바로 고객에게 배송하는 직송(Point to Point)을 기본으로 한다면, 원더스는 한 퀵서비스 기사가 10개 이상의 상품을 들고 이동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게 해서 3시간 배송으로 조금 느리지만, 저렴한 가격에 퀵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다는 이론이다.

택배송장 배송현황 조회 결과. 서울(종로ASub)에서 출발한 상품이 인천에 있는 우리집으로 바로 안 오고 애꿎은 군포HUB (택배 허브터미널)라는 곳에 빠졌다가 다음날 배송지 근처인 계양1Sub(택배 서브터미널=대리점)라는 곳을 거쳐 기자의 자택으로 배송된 것을 볼 수 있다. 이게 허브앤스포크다. 한국의 택배 시스템은 ‘당일배송’이 불가능하지만, 허브앤스포크 시스템을 기반으로 규모를 만들어 원가 경쟁력을 만들었다.

그 업체가 올해 초 상징과도 같았던 ‘5000원 단일가 퀵서비스’를 접었다. 전속 고용한 퀵서비스 배송기사를 통해 제공됐던 원더스의 핵심 사업은 타 퀵서비스 업체에 주문을 공유하는 ‘중개 서비스’로 바뀌었다. 원더스에 고용됐던 전속기사 역시 상당수 원더스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원더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 중단 사유에 대한 갖가지 추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군소화주로 만들지 못한 규모

원더스의 단일가 퀵서비스가 서비스 종료 절차를 밟은 이유는 이렇다. 원더스가 손익분기점(BEP)을 넘기는 수준으로 설정한 하루 2500개 이상의 물량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전속기사 고용’과 ‘물류센터 운영’으로 대표되는 물류영역에서는 지속적으로 ‘비용’이 타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원더스는 지난해 기준 2000개가 넘는 고객사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보다 ‘질’에 있었다. 한 달에 몇 번 퀵서비스를 이용하는 군소화주(C2C)가 중요한 게 아니다. 확실하게 하루 몇십건 이상 물류 서비스를 이용하는 정기화주(B2C, B2B)가 필요하다. 원더스는 수많은 군소화주를 확보했을지언정, 유의미한 숫자의 정기화주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허브앤스포크 기반 5000원 단일가 퀵서비스 종료 후 원더스가 제공하는 배송 서비스. 여기서 ‘당일 배송’은 일부 물량이 많은 B2B, B2C화주의 물량처리를 의미한다. C2C 물량은 직접하지 않고 중개업체에 넘긴다.(자료: 원더스)

한 번에 1~2건의 배송량이 나오는 군소화주들의 물량을 집하하려면 픽업 지역이 분산되기에 물류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예컨대 액자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화주가 있다고 한다면, 액자 30개를 한 박스에 넣고 바로 물류센터로 가지고 오는 것과 액자 1개, 의류샘플 1개, 화분 1개와 같은 서로 다른 화주의 픽업지를 돌며 물건을 수거하고 물류센터로 가지고 오는 것은 효율성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화주의 물량 규모가 물류 효율을 만든다.

더욱이 화주들은 원더스의 5000원 단일가에 만족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이상의 물량을 가지고 있는 화주라면 끊임없이 “더 싸게”를 요구했다. 원더스 역시 물량이 많은 화주는 5000원보다 저렴한 단가에 계약해줬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화주가 계약 당시 약속한 물량은 꾸준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이벤트 기간에는 하루 수십건씩 나오던 물량이 이벤트가 끝나면 한 자리 숫자로 줄어드는 일이 일어났다.

김창수 원더스 대표는 “광고를 통해 C2C화주를 유입시켜 그 레퍼런스로 B2B고객을 영업해서 어마어마한 물량을 터뜨리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며 “만약 목표했던 물량을 달성했다면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 모델은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속기사물류센터로 할 수 있는 것

원더스는 핵심역량으로 내세웠던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의 서비스 종료 이후 그 다음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원더스가 가진 경쟁력은 무엇일까. 일단 원더스에는 자사 물량만 처리하는 전속 퀵서비스 기사가 있었다.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건당 임금을 받는 ‘공유기사’와는 달리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인력이다. 두 번째는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 운영을 위해 구축한 용산 물류센터와 간선망이 있었다. 이 두 가지는 원더스의 차별점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물류에 많은 비용을 태우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이것으로 무엇인가 해야 됐다.

그때 김창수 대표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 휴대폰 온라인 판매 시장이었다. 김 대표에 따르면 현재 휴대전화는 대부분 오프라인 ‘대리점’을 통해 판매, 개통된다. 이건 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거의 동일한 상황인데, SK텔레콤의 공식 온라인몰 T월드다이렉트샵 기준으로 판매율은 3%가 채 안 된다는 설명이다. 마침 통신3사를 중심으로 ‘온라인 휴대폰 판매’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는 움직임도 보였다. 오프라인 휴대폰 판매만으로는 뺏고 뺏기는 출혈경쟁만 있었고, 통신 3사의 시장 점유율은 50:30:20(SK텔레콤:KT:LG유플러스, 알뜰폰 시장제외) 수준으로 정체돼 있는 상황이었다. [참고기사: SKT 점유율 40%도 위태 사실일까?..3가지 통계제각각, 이데일리]

물론 휴대폰 온라인 구매의 확장을 막는 요인은 있었다. 대표적인 요인은 ‘개통’과 ‘데이터 이전’이다. 예컨대 온라인으로 휴대폰을 주문하면 기기를 택배로 받는데, 기기를 개통하려면 그걸 들고 근처에 있는 ‘대리점’에 가야한다. 온라인 구매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더군다나 택배는 최소 1박 2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1박 2일의 수령시간을 극복하고자 온라인 판매 휴대폰의 ‘대리점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있다. 이 경우 대리점에 재고가 없는 모델에 한해서 ‘구해오는’ 시간을 절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역시나 온라인에서 구매한 휴대폰을 수령하려면 대리점에 방문해야 한다. 그렇다고 대리점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것이 더 저렴한 것도 아니다. 오프라인 대리점에 방문하여 휴대폰을 사는 것에 비해 ‘온라인 주문’이라는 귀찮은 과정이 하나 추가됐을 뿐이다.

실패를 기회로 뒤집어 본다면

원더스는 이 두 가지 문제점을 그간 비용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였던 ‘전속기사’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단순히 ‘퀵서비스 당일배송’만 해주고 끝내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배송과 함께 ‘개통’과 ‘데이터 이전’ 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한다. 고객 입장에서 굳이 오프라인 대리점에 다시 갈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이를 위해선 배송기사의 ‘교육’이 필수적이고, 그렇기에 건당 배송비를 받는 ‘공유기사’는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가 된다. 전속기사이기에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사실 가장 큰 허들은 따로 있었다. 온라인 판매 휴대폰의 당일배송과 개통 니즈를 가진 ‘통신사’와 업무제휴를 만드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더스는 SK텔레콤이 운영하는 T월드다이렉트몰의 ‘오늘도착’ 서비스의 단독 제휴 파트너로 선정됐다. 물론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창업 전 SK텔레콤 마케팅커뮤니케이션실에서 팀장을 했던 김창수 대표의 경력이 제휴까지 이어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는 정도로 갈음한다.

원더스의 용산 물류센터는 여전히 허브센터의 역할을 한다. 달라진 것은 집하효율이다. 과거 군소화주들로 인해 분산된 픽업지는 SK텔레콤의 성수동 물류센터 ‘하나’로 줄어들었다. 상품부피가 크지 않은 휴대폰이기에 이륜차 픽업으로도 한 번에 수십개의 물량을 집하할 수 있다. 효율은 자연히 올라간다. 원더스는 SK텔레콤 물류센터에서 점심 12시, 오후 2시, 오후 4시까지 하루 3번 픽업을 한다. 그렇게 모아온 휴대폰을 허브센터에서 배송권역별로 분류하여 오후 8시까지 당일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원더스 전속기사는 SK텔레콤 복장을 입고 개통과 데이터 이전 서비스를 포함한 휴대폰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해준다.(사진: SK텔레콤)

물류비에 ‘0’ 하나가 더 붙어도 감당되는 이유

원더스는 온라인 구매 휴대폰 당일배송에 ‘개통’, ‘데이터 이전’을 포함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배송비를 포함한 서비스 제공에 대한 추가비용을 받는다. 원더스에 따르면 정확한 비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과거 5000원 단일가 퀵서비스를 하던 시절과 비교해서 몇 배 이상 늘어난 단가를 받는다고 한다.  휴대폰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SK텔레콤 입장에선 퀵서비스에 비해 높은 배송비와 추가서비스 비용은 부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원더스를 이용함으로 오히려 ‘비용절감’이 가능해진다. 기존 SK텔레콤은 대리점이 휴대폰을 판매할 경우 건당 약 20만원의 판매 수수료를 지급했었다. 원더스는 온라인 휴대폰 판매에 있어 오프라인 대리점과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비용은 대폭 낮춘 모델이다.

향후 원더스는 10만원 수준의 가격에 프리미엄 서비스까지 제공할 계획이다. 배송기사가 ‘요금제’나 제휴카드나 인터넷 결합 할인 등 ‘제휴 및 부가 서비스’ 안내까지 해주는 개념이다. 이렇게 된다면 ‘오프라인 대리점’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원더스가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부르는 대리점’이 된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대리점보다 50% 가까이 저렴한 가격은 차별요인이 된다.

화려한 실패를 딛고

원더스는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의 실패를 딛고 다시 한 번 도약기를 맞이하려 한다. 그들의 실패의 대표요인이었던 ‘물류센터’와 ‘전속기사’는 새로운 경쟁력을 만드는 핵심요소가 됐다. SK텔레콤이라는 시장점유율 50%에 육박하는 기업과의 제휴는 막대한 ‘규모의 경제’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원더스는 2019년을 기점으로 현재 서울에서만 제공하고 있는 오늘도착 서비스를 수도권, 나아가 전국까지 확장하려고 한다. 현재 원더스 전속 배송기사들은 전원 개통과 데이터이전을 할 수 있는 ‘전문배송’을 처리할 수 있는 이들로 교육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반 휴대폰을 넘어 CJ헬로비전, SK텔링크, KT엠모바일 등이 경쟁하고 있는 ‘알뜰폰’ 시장까지 넘본다는 계획이다.

김창수 원더스 대표는 “원더스는 과거 단순히 배송업무를 제공했던 사업자를 넘어서 물류에 ‘서비스’를 결합한 고객 경험을 배송하는 회사로 거듭날 것”이라며 “기존 이커머스의 가장 큰 취약점이었던 ‘오프라인 고객경험’을 배송을 통해 구현하여 DeeX(Delivery Experience)라는 기지 아래 물류시장을 변화시킬 것”이라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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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기자가 글을 참 잘씁니다. 이런 종류의 기사는 기자가 마구잡이로 써서 무슨말인지 알수도 없는 것이 참으로 많은데 엄지용 기자님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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