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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 사주는 판교 형’ 정욱 넵튠 대표

정욱 넵튠 대표

정욱 대표를 처음 본건 2013년, 그가 넵튠을 창업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큰 회사에서 나와 스타트업을 창업하니 어떠하느냐는, 그런 요지의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났었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그는, ‘한게임 대표 출신’이란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격의 없었다. 그러니까, 대강 10여년 쯤 연차 어린 후배가 “선배, 나 밥 사줘”라고 말해도 언제든 콜 할 것 같은 그런 인상이었달까.

그리고 5년이 흘렀다. 넵튠은 그 사이 상장했으며, ‘프렌즈 사천성’이나 ‘라인 퍼즐 탄탄’ 같은 한국과 일본에서 중박 이상 친 게임을 냈고 거액을 투자 받아 다시 거액을 투자하는 중견 게임사로 성장했다. 정 대표의 머리는 짙은 갈색으로 차분해져 있었고, ‘주가’를 고려하여 말을 아꼈으나 여전히 겸손했고 털털했다.

사실, 정욱 대표를 다시 인터뷰 해야겠단 생각이 든건 넵튠이 300억원을 유치하고 그 중 50억원을 ‘헬로 히어로’로 잘 알려진 게임 개발사 핀콘에 투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일명 ‘3N(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말고는 다 죽어나간다는 게임판에서, 왜 핀콘에 거액을 투자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물론, ‘배틀그라운드’가 공전의 히트를 칠지 어떻게 알고 블루홀에 투자 했는지 하는, 그 비결도 알고 싶었다.

최근 정 대표의 행보가 뜰 만한 곳에 돈을 쓴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고 난 이후긴 하지만, 넵튠이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앤파트너스와 블록체인 기반 게임 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펀드 100억원을 조성한다는 발표도 했다. 그는 현재  e스포츠나 MCN같은, 보는 게임에 대한 투자도 염두에 두고 있다. 돈을 받든 주든, 여하튼 정욱 대표와 넵튠의 소식이 부지런히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를 최근 경기도 성남 정자동에 위치한 넵튠 회의실에서 만났다.

Q. 오랜만이다. 머리 색이 인상적이었는데, 갈색으로 차분해졌다

아무래도 상장사다 보니까 주총도 해야하고(웃음). 나이도 있으니까(정욱 대표는 1972년 생이다).

Q. 그사이 회사가 상장했다. 상장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넵튠은 2016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대마 불사. 회사가 안 망하려고 상장했다. 넵튠이라는 회사를 갖고 앞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정리하고 팔까, 계속할까를 고민하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라는 생각에 넵튠을 계속 하기로 했다. 그래서 상장했다. 아무래도 상장하면 망하긴 어려우니까. 그리고 상장할 수 있을 때 하려는 생각도 있었다.

Q. 상장 후 경영자 입장에서도 행동이 달라진 게 있나 

주가가 요동을 치니까 발언이 조심스럽다. 주가가 왔다갔다 하는게 일단 스트레스이긴 하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내 마음을 분리해내는데 시간이 걸리더라. 어쨌든, 넵튠이라는 회사의 주식을 사서 많은 사람이 돈을 벌고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야 나도 좋은거지, 누군가 여기서 돈을 잃는 사람이 생기면 그것 자체가 큰 부담이다.

Q. 상장이 회사 운영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

상장을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큰 자금 유치도 조금은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다른 회사와 인수합병(M&A) 얘기도 훨씬 더 쉽게 할 수 있다. 재무적인 부분이나 투자 측면에선 확실히 유리하다.

Q. 넵튠의 근황은 어떤가

만들고 있는 게임의 숫자가 늘어났다. 캐주얼 게임 쪽을 많이 한다. 일본에서 라인하고 같이 했던 ‘탄탄 시리즈’의 후속작을 다시 일본에서 내도록 준비 중이다. 국내에선 ‘카카오 프렌즈 사천성’을 했었는데, 다른 카카오 프렌즈 게임도 만들고 있다. 장기를 두듯 말을 움직여 하는 P2P 게임도 준비하고 있고, 자회사 통해 PC 게임도 하고 있다. 최근 PC 게임을 하려는 회사가 늘고 있는데 아무래도 블루홀의 영향이 크다. 스팀처럼 퍼블리셔 없이 서비스할 수 있는 방향 제시를 배틀그라운드가 해줬다.

Q. 배틀그라운드 성공으로 블루홀에 투자한 넵튠도 돈을 벌었다. 그런데 왜 300억원을 투자 받았나

블루홀 주식을 팔 수 없으니까(웃음). (블루홀이 앞으로) 더 잘 될 것 같다. 최근 게임 시장을 보면, 유저가 직접 하는 게임도 잘 되지만, ‘보는 게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핫해지고 있다. 유튜브가 한국에서 장난이 아니다. 보는 게임 시장에도 진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한 자금을 유치 한 거다. 물론 우리 자체 제작 게임을 위한 자금이기도 하다.

Q. 보는 게임은 어떻게 준비 중인가

e스포츠나, MCN에서 게임 스트리밍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무(無)에서부터 시작하긴 어려우니까, 인수나 투자를 통해 셋업을 하려한다. 정해진 데는 없지만, 현재 열심히 얘기 중이다.

Q. 투자하는 곳의 승률이 좋다

(블루홀 성공 이후) 비결이 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얻어걸린 거다. 이렇게 말하면 펍지에서 싫어할 수 있겠지만(웃음) 배틀그라운드에 기대하고 투자한 건 아니다. 사실은 ‘에어’를 보고 한 건데, 소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잡은 격이다.

Q. 그래도 투자 원칙이 있다면

대단한 전략이 있거나, 앞으로 어떤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블루홀 장병규 의장이나 김강석 (전) 대표도 그렇고 워낙 오래 잘 알고 지냈고 그러다보니 회사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자금이 필요할 때 마침 우리가 돈이 있어서 운이 맞아 떨어졌다. 주로 잘 알고, 인연이 오래된 회사에다가 투자를 했던 것 같다. 그 회사가 얼마나 좋은 회사이고 진지하게 게임을 보는지, 개발력이 얼마나 있는지 아니까 투자한거다.

밥 잘 사주는 판교 동네 형, 정욱.

Q. 핀콘 유충렬 대표와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가

한게임에서 C9을 할 때부터 알았다. (넵튠과 핀콘의 사무실은 정자동 킨스타워 한 층에 나란히 위치했다) 옆 집인 상태에서 투자한 거다. 워낙 잘 안다. 어느날 소주 한 잔 하다가 유충렬 대표가 “다시 투자를 받아야 한다”고 하길래 “우리가 할게”해서 한 거다.

Q. 후배들이 유난히 잘 따르는거 같다

거절을 잘 안하는 스타일이고, 밥 사주고 이런 걸 잘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후배랑 자주 만나기론) 업계 톱일 것 같다. 그중에 괜찮은 회사도 많다. 탐나는 회사들도 있고. 그런데, 내가 보기 괜찮은 회사는 낭중지추라고, 다 알아본다. (투자하려면) 경쟁이 생긴다.

Q. 자주 만나다 보면, 그래도 투자를 선점할 때 유리하지 않나

조금은 영향이 있겠지. 후배들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잘 교류하다 보니까 투자의 기회가 생겼을 때를 잘 잡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네트워크’라는 게 있다. 그게 뭐냐면, 내가 뭔가를 할 때 신이 기회를 나한테 직접 주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준다. 이 사람을 통해서 다음에 나에게 기회가 오기를 바라는 거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 게임 업계에 있지 않은 사람까지 다양하게 친하게 지내다보면 좋은 기회를 얻게 되고 그러는 것 같다.

Q. 블록체인에도 관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블록체인 서비스가 많아지니까 스팀잇이나 콘텐츠를 유료화할 수단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스트리밍이나 동영상처럼 게임과 관련한 콘텐츠에 지금 당장은 광고 외에 수익 모델이 없다. 향후에는 다른 수익모델이 많이 나올 수 있다. 블록체인도 그중 하나다. 블록체인과 관련한 다양한 서비스 나오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할 거다.

Q. 올해 일본 시장 매출 중위권 진입이 목표라 들었다. 왜 일본인가

글로벌로 다 출시를 한다. 그렇지만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곳이 일본이다. 오래 해왔고, 경험도 있어서다. 일본 시장은 워낙 커서, 중위권만 돼도 매출이 나쁘지 않다. 매출 100위의 월 수익이 10억원 이상 나온다. 60위 정도면 20억원이다. 이정도는 한국의 10위권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일본은 어느날 갑자기 톱10에 들기는 어려운 시장이다. 소비자 눈에 익어야 한다. 우리는 라인 탄탄으로 꾸준히 3년째 10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일본에 두 개의 새 게임을 낸다. 두번째 프로젝트는 이전보다는 나은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다.

Q. 조금 다른 얘긴데, 광화문 지하철 역 광고판에서 정욱 대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광고모델이 되다니, 어떤 계기인가

기술보증기금(이하 기보) 광고다. 기보에 돈을 빌린 회사 중에 상장한 회사가 최근엔 많지 않았는데, 명예 홍보 이사를 해달라고 연락왔다. 우리가 기보에 도움도 많이 받기도 했고, 기보 본사가 부산에 있는데 나도 부산 출신이기도 하니까 알겠다고 했다. 그때 찍은 사진을 광화문에 붙여 놨다. 그걸 본 사람들한테 전화를 많이 받았다. 어디가서 나쁜 짓은 못하겠구나, 했다(웃음).

Q. 정욱 대표 페이스북 담벼락에, 누군가 어릴때부터 벽을 뛰어넘는 사고를 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공부를 안 했다는 이야기와 같은 거다(거짓말이다. 정욱 대표, 서울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 나왔다). 그 이야길 한 친구는 박사까지 하고 실리콘밸리에서 테슬라에 다닌다. 당시 우리과 친구들은 대체로 석사하고 박사해서 전문연구위원으로 병역특례가 많았다. 서울공대 대부분이 군대에 안 갔다. 우리 학번에선 두 명만 군대에 갔는데 그 중 하나가 나다. 지금 인생을 돌아볼때 가장 잘한 일이 뭐냐, 넘버원이 군대 간 거다.

Q. 왜 병역특례를 하지 않았나

군대를 갔다왔기 때문에 석사도, 박사도 안했다. 만약 전문 연구위원을 했다면 나도 뻔하게 삼성이나 LG에 갔을 거다. 군대에 가서 전형적인 길을 걷지 않았다.

Q. 군대에 가서 전형적인 길을 걷지 않았다니. 그 발언이 전형적이진 않다(웃음)

그런가? 하여튼 그때는, 석박사를 밟고 군대에 안 가는게 평균에 수렴하는 인생이었다. 인생을 최대치로 살려면 딴길로 가야지 쫄딱 망하거나 잘 되거나 둘 중 하나다. 남들이 가는 길을 가는 건 평균적인 삶이다.

Q. 창업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나

‘굿 투 그레이트’란 책을 보면 ‘스톡데일 패러독스’란 말이 나온다. 끝까지 살아 남는 사람은, 길게는 긍정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나도 넵튠을 계속 하면서 “우리는 잘 될거야, 하지만 이번 게임은 잘 안 될 수도 있어”라고 항상 생각했다. 이번 게임은 무조건 잘 된다고 가정했는데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그 순간 회사는 끝이다. 후배들에게 늘 이런 이야길 한다. “이번 게임은 망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너희 회사는 잘 될거다, 이런 마음으로 해라”라고.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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