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보니] 아이폰X을 기다리지 말고 아이폰8을 사야할 이유

초창기 아이폰을 즐겁게 쓸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제품이 1년에 한 가지만 나온다는 점이었다. 2~3달 주기로 온갖 펫네임(별명)을 달고 나오는 ‘최신폰’이 이끌던 기존 휴대폰 시장과 전혀 다른 방식은 묘한 가치를 만들어냈다. 신제품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긴 하지만 기능이 쪼개지고, 업데이트 등 기술 지원도 또 다른 신제품이 나오면 밀리게 마련이다. 애플은 1년에 한 가지 아이폰만 만들었고, 이 기기에 최선을 다 했다.

그런데 아이폰6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애플은 큰 화면에 대한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4.7인치와 5.5인치 두 가지 화면을 내놓았다. 출시 직전까지 둘 중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몰라서 엄청나게 고민했고, 결국 손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1년 내내 ‘아이폰6플러스를 고를 걸 그랬나’라는 고민에 빠져 있었고, 이듬해 아이폰6s를 골랐다. 그러니 다시 손에 쏙 들어오는 4.7인치가 걸렸다. 심지어 애플은 4인치 아이폰SE도 내놓아서 결정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 고민의 크기가 올해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폰8과 아이폰8플러스를 둔 화면 크기 고민은 아직도 그 답을 못 찾았고, 게다가 완전히 달라진 아이폰X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9월 아이폰 발표 행사에서는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아이폰X이 진짜 새 아이폰이고 아이폰8은 보급기처럼 보였다. 아마 지금 시장도 대부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해 아이폰8 시리즈는 예약에 예전처럼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았고, 애플스토어에서 쉽게 손에 넣을 수도 있다. 반면 아이폰X은 1차 출시국의 예약이 시작되자마자 올해 안에 물건을 받기 어려울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정말 아이폰X만 답일까?

● 트루톤 디스플레이에 만족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이폰X을 직접 만져본 느낌을 돌아보면서 마음 속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먼저 출시된 아이폰8을 만져보면서 의외로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아이폰X을 쓰겠지만 다시 머릿속에서는 홈 버튼이 있는 아이폰8을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폰X의 디자인은 굉장히 멋지고, 홈 버튼이 없는 새 UX는 익히기에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잠금 화면부터 홈 버튼 등 지난 10년 동안 서서히 익숙해진 아이폰의 경험을 버리는 게 선뜻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폰8은 볼수록 생각보다 더 잘났다. 잘 빠진 신제품과 함께 등장한 원죄로 기대가 적었던 것도 이유겠지만 성능과 배터리 이용 시간은 확실히 좋아졌고, 뒷면이 유리로 바뀐 디자인도 작은 변화지만 상당히 세련됐다.

일주일 정도 아이폰8을 쓰면서 생각은 어느 정도 정리됐다. 일 때문에 아이폰X을 사겠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아이폰8을 골랐을 것 같다는 쪽으로 말이다. 적어도 지금 아이폰7은 다시 켜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이폰8이 만족스럽다.

아이폰8(왼쪽)과 아이폰7(오른쪽)의 화면 차이. 트루톤 디스플레이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연스러운 색을 만들어낸다. 일단 눈이 아프지 않다.

다소 과한 표현 같긴 하지만 정말 아이폰7의 화면을 보는 게 괴롭다. 아이폰8의 트루톤 디스플레이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애플이 꺼내 놓은 기술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바로 이 트루톤 디스플레이다. 주변 빛에 따라 화면의 색 온도를 조정하는 것이다. 아이패드 프로 9.7인치부터 들어갔던 것인데 4개의 센서가 환경을 읽어 적절한 화면을 만들어준다. 블루라이트를 빼주는 나이트 시프트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는 파란색을 의도적으로 빼면서 색이 무너지는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 반면 트루톤 디스플레이는 색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각 환경에서 가장 쾌적한 색 온도를 만드는 것이다. 흰색이 하얗게 보이는 기준이 옮겨진다는 이야기다.

트루톤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화면은 눈을 굉장히 편안하게 해 준다. 이 때문에 다시 한 가지 색 온도만 표현할 수 있는 아이폰7의 화면을 보면 대체로 시퍼런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트루톤 디스플레이는 필요에 따라서 끌 수도 있다. 트루톤 디스플레이는 말로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기술인데, 화면을 자주, 그리고 많이 본다면 가장 큰 차이로 느껴질 것이다. 맥북 프로나 아이맥에도 빨리 트루톤 디스플레이가 적용되길 바라본다.

● 두 배 정도 빨라진 고속 충전

또 다른 차이는 배터리다. 사실 아이폰8의 배터리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배터리가 부풀어 오른 채 판매된 제품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명확한 애플의 대응이 없는 것은 아쉽지만 최근에는 더 이상 배터리가 부푼 아이폰8이 나오지는 않는 듯하다. 공정 관리를 기가 막히게 하는 애플의 특성상 초기에 배터리 공급망에 변화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해 보는 정도다.

일단 배터리 성능은 더 나아진 느낌이다. 아이폰8과 아이폰8플러스의 배터리 용량은 이전보다 조금 더 줄어들었다. 하지만 A11 바이오닉 프로세서의 효율성이 좋아지면서 그만큼 전력 소비량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새 프로세서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A11 바이오닉 프로세서는 고성능 코어와 저전력 코어가 2+4 구조로 합쳐진 6코어 프로세서다. 이전 세대 A10 퓨전 프로세서보다 저전력 코어의 성능이 70%, 고성능은 25% 정도 나아졌다고 하는데 서로 다른 프로세서 코어를 다루는 성능 콘트롤러가 개선되면서 상황에 따라 코어 여섯개를 함께 활용할 수 있게 되는 등 프로세서를 더 유연하게 쓸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성능과 효율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최고 작동 속도는 2.08㎓로 A10 퓨전 프로세서의 2.4㎓보다 낮아졌지만 성능은 도리어 높아졌다. 전력당 성능이 좋아진 것이다. 프로세서의 효율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전력당 성능인데, 애플이 직접 설계한 새 GPU는 A10 퓨전 프로세서와 같은 성능을 내는 데 절반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벤치마크 테스트에서도 멀티 코어는 아이폰7보다 두 배 정도 높게 나온다. 벤치마크 테스트만으로 A11 바이오닉을 두 배 빠른 프로세서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멀티코어가 쓰이는 응용 프로그램에서는 확실히 더 나은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아이폰8과 아이폰7의 성능 차이는 직접 체감하기 어렵다. 아이폰7의 A10 퓨전 프로세서는 여전히 빠르고, 아이폰용 응용프로그램들의 특성상 새 기기의 성능을 100% 끌어쓰지 않는다. 아이폰6s로도 아직 대부분의 게임이 느리지 않다. 아이폰6s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이폰7과 아이폰8의 성능 차이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배터리가 떨어지는 속도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저전력 코어의 성능이 개선되면서 고성능 코어까지 켜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배터리를 일부러 떨어뜨리려고 유튜브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했는데 아이폰7과 비교해서 부쩍 오래 버텼다. 프로세서의 사용 상황을 세세히 볼 수는 없지만 이런 상황이 저전력 코어로만 작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폰7이 1년 동안 썼던 제품이기 때문에 새 기기의 배터리 이용 시간이 긴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비슷한 상황에서 더 오래 간다는 것이다.

고속 충전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배터리 용량이 50% 아래로 내려갔을 때 고속 충전기에 연결하면 충전 속도가 부쩍 빨라진다. 물론 고속 충전기는 따로 사야 한다. 아이패드 프로용 29W 충전기를 쓸 수도 있고, 맥북 프로용 어댑터를 써도 된다. 고속 충전기에 연결하면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됐을 때 30분 정도면 전체 용량의 절반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충전 속도가 빨라지면 배터리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충전 용량이 50%를 넘으면 일반 충전으로 바꾼다. 급할 때는 아주 빨라졌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빨라지긴 했다. 고속 충전은 배터리 수명에 그리 좋은 영향을 주지 않지만 아이패드용 12W 어댑터 정도를 쓰면 된다. 사실 이전 아이폰들도 아이패드용 어댑터에 연결하면 충전 속도가 그만큼 빨라지긴 했다. 아이폰8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댑터 전력의 양을 더 늘렸다고 보면 된다. 아이폰7과 비교해서 50%까지는 두 배 정도 빨리 충전한다고 보면 된다.

● 지난 10년 가다듬은 아이폰의 완성

디자인은 알루미늄의 톤이 조금 달라졌고, 뒷면이 강화유리로 바뀌었다. 이전에 설명했던 것처럼 강화유리는 충격에 50% 더 강해졌고, 그 아래에 7개 층으로 색을 표현하면서 오묘한 느낌이 있다. 유리는 반짝이는데 그 안쪽은 반사되지 않는 대비도 볼수록 괜찮다. 늘 말이 많던 알루미늄 밴드는 옆면에만 둘렀고, 그 색도 바뀌면서 전반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 생김새가 벌써 4세대째 이어져 오고 있고, 아이폰8이 아이폰7s니, 아이폰6ss니 하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 형태로는 가장 완성된 디자인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케이스를 씌우면 아무도 모른다. 케이스를 씌워 일주일을 들고 다녔지만 아이폰8이냐고 묻는 사람이 없어서 서운할 지경이었다.

카메라는 1200만 화소에 조리개 값은 f/1.8이다. 아이폰8플러스에는 f/2.8의 카메라가 하나 더 들어간다. 카메라의 기본적인 모양도 비슷하다. 당연히 세대 교체에서 기대할 수 있는 화질 차이는 확실하다. 색을 표현하는 다이내믹 레인지가 높아졌고, 노이즈가 줄었다. 키노트에서 발표된대로 센서가 더 깊어지면서 빛에 예민해졌고, 결과적으로 80% 정도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어두운 쪽의 감도가 좋아졌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어두운 곳에서 초점을 잡는 속도도 빨라졌다.

아이폰8플러스의 인물 사진 모드에서 화질 차이는 더 크게 나타난다. 얼굴 표현을 맡는 망원 렌즈의 감도가 높아지면서 얼굴이 더 매끄럽게 표현된다. 얼굴을 따로 분리해서 가상의 조명 효과를 주는 ‘스튜디오 조명’은 아직 베타 버전이어서 간혹 얼굴을 정확히 골라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조건이 잘 맞으면 기가 막힌 인물 사진이 나오기도 한다.

작은 변화지만 사진을 찍을 때 탭틱 엔진이 살짝 두드려주는 느낌을 주는데 그 손맛이 좋다. 우리나라 판매용 제품에 카메라 소리가 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드는 부분이다.

실제 손에 잡힌 아이폰8은 앞서의 선택에 대한 고민을 더 크게 해준다. 분명 아이폰8은 이제까지 애플이 만든 가장 좋은 아이폰이다. 아이폰X은 앞으로의 아이폰에 대한 이정표다. 성능은 똑같다. 다른 것은 디자인과 UX가 만들어내는 경험 차이다. iOS11과 A11 바이오닉 프로세서에 어떤 옷을 입혀서 쓸 지를 결정하면 된다. 말은 쉽다. 하지만 아이폰8은 아이폰X에 가려질 만한 제품은 아니다. 조심스럽게 예상해보자면 아이폰8은 아이폰X이 출시된 이후에 다시 평가될 것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호섭 기자>hs.choi@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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