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의 기업들이여, API 하라”

KakaoTalk_Photo_2016-03-14-12-48-12_66.jpg나는 운전할 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주로 사용한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은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어 추가비용 없이 실시간 교통정보를 이용할 수 있고, 최신 지도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쉽다.

나는 친구와 약속 장소를 잡을 때 더이상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지도 앱에서 만날 장소를 검색해 친구의 카톡으로 전달하면 끝이다. 메시지를 받은 친구는 지도 앱의 길찾기 기능을 통해 자신의 위치에서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면 가장 빠른지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 더이상 영화관을 검색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검색하면 내가 있는 위치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상영하는 영화관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스타벅스에서 줄을 서지 않는다. 스타벅스에 들어가기 전에 사이렌오더를 통해 이미 주문은 끝낸다. 스타벅스 앱에서 결제까지 마치면 내 위치 근처 매장 중 내가 선택한 곳으로 주문이 들어간다.

GPS-IIRM.jpg이 모든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GPS와 같은 위치를 알 수 있는 센서가 스마트폰에 내장돼 있고, 거기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애플리케이션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앱들은 GPS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일까? 내비게이션 앱이나 지도 앱, 영화 앱, 스타벅스 앱 모두 각기 다른 회사들이 만들었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만든 앱이 아니다.

API(Application Programing Interface) 때문이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는 위치 정보 데이터를 외부의 앱이 이용할 수 있도록 API로 제공한다. 앱들은 API를 통해 받은 데이터를 각자의 필요 따라 응용할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런 일은 상상의 범주 안에 없었다. 휴대폰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제조사나 제휴를 맺은 협력업체만 사용할 수 있었다. 외부의 개발자가 마음대로 이를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애플이 모바일 혁명을 일으킨 회사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플 이전에도 스마트폰은 많았다. 하지만 애플은 스마트폰의 데이터와 기능을 외부 개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API를 개방한 점이 달랐다. 모바일 혁명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애플은 API 개방을 통해 단순 스마트폰 제조사가 아닌 플랫폼 업체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API를 개방하고, 그 API로 만들어진 앱을 유통시킬 수 있는 앱스토어를 제공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애플과 기존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결정적 차이는 API에 있다고 볼 수 있다.

API 관리 소프트웨어 업체 CA테크놀로지의 조상원 이사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은 API”라고 말했다. 기존의 제조업체나 서비스 기업이 API를 만들고 개방함으로써 IT기업화 되는 것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설명이다.

대표적 사례로 은행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은행은 금융 서비스 기업이었다. 예금, 적금, 송금, 이체, 대출 등이 은행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들은 은행만이 제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NH농협은행은 지난 해 ‘핀테크 오픈플랫폼’이라는 것을 개설했는데, 이를 통해 계좌이체, 잔액조회 등 53개의 금융 서비스를 API로 제공한다.

스크린샷 2016-03-14 12.50.34.png이는 외부의 앱이 이 API를 이용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동창회 모임이 열리는 앱에서 회원의 회비 청구, 실시간 납부 확인, 미납 관리 등을 할 수 있다. 이런 API가 활성화 되면 은행은 금융회사가 아닌 제3의 회사들에게 금융 API를 판매하는 IT기업이 되는 셈이다.

바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전통기업들은 지금까지 IT를 활용해서 프로세스를 혁신 하거나 생산성을 높일 방안을 찾았으며, 고객을 만나는 창구를 넓혔다. 이를 두고 e비즈니스라고 불렀다.

이에 비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IT를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IT기업이 되자는 움직임이다.

은행의 경우 인터넷 전문은행, 핀테크 업체 등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하지 않을 경우 생존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 기존방식의 금융회사에 머물러 있게 되면 새로운 핀테크 회사들은 은행의 경쟁사가 된다. 하지만 은행이 내부 자원을 API로 공개하면 핀테크 회사들은 파트너나 고객이 될 수 있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에서 시작돼 전반적인 유통회사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IT자원을 쌓았다. 여기까지는 e비즈니스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마존은 이 IT자원을 외부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API로 공개했다. 전 세계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끌고 있는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여기에서 시작됐다.

조상원 이사는 “내 서비스나 데이터를 외부에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시작”이라면서 “하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보안부터 시작해 기존 IT인프라와의 통합, 관리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 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