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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를 만나다] ‘도망자’ 신영우, 사심 인터뷰

누구한테나 있다. 현실보다 재밌는, 그래서 자꾸 빠져들고 싶은 또 하나의 세계가. 그게 나한테는 만화였다. 1990년대 후반, 가장 인기 있던 코믹물은 단연 <키드갱>이었다. <키드갱> 신권이 나오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교과서 사이에 몰래 끼어놓고 봤다. 속으로 웃은 줄 알았는데 현웃(현실웃음)이 터져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완결이 나지 않은 채 연재가 중단됐을 땐 세상을 원망했다.

2012년에 <키드갱>이 네이버에 다시 연재됐다. 10년 만에, 강대봉과 칼날, 술홍(<키드갱> 주인공들이다)이 웹툰으로 살아 돌아왔다. 키드갱은 요즘 유행하는 <원펀맨> 같은 만화다. 숨어있는 절대 고수, 강대봉의 한 방을 숨죽여 기다렸다. 그즈음 아는 선배의 소개로 <키드갱>을 그린 신영우 작가를 만났다. 설레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가끔 소주 한 잔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시 취재를 시작하면서, 신 작가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지난 27일, 까치산 어느 횟집에서 소주와 우럭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는 올해 초 네이버 웹툰에 <도망자> 연재를 시작했다. 미리 말하지만, 이 인터뷰는 팬심(사심)이 절반이다.

신영우 작가신영우 작가

신영우는 _ 1994년 <남자만들기>란 만화로 데뷔했다. 1996년에 <키드갱> 연재를 시작하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다만, 아쉽게도 <키드갱>으로 큰돈을 벌진 못했다. 얻은 건 명성뿐. 네이버 웹툰에 <키드갱>을 다시 연재했고 레진코믹스에 <서울협객전>을 그렸다. 올해 들어 네이버를 통해 신작 <도망자>를 그리고 있다.

다음 링크는, 나무위키에 등재된 신영우 작가 페이지이고,
namu.wiki/w/%EC%8B%A0%EC%98%81%EC%9A%B0
요 링크는, 네이버 캐스트에 실린 신 작가 인터뷰다. 신영우 작가와 작품을 자세히 다뤘다.
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97&contents_id=29919

Q. 첫 질문이 좀 후져서 미안하다. 왜 만화를 시작했나

A. 좋았으니까. 그것밖에 더 있겠나. 좋아하는 것엔 “왜”를 붙이기 힘들다. (좋다는 감정을) 계산해서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Q. 1994년에 데뷔했다. 벌써 23년이 지났는데, 만화를 계속하는 이유는

A. 데뷔하는 순간 다 프로가 되는 거다. 좋아하기도 하고, 또 생활이 되기도 했으니까. 수입도 생각해야 한다.

Q. 무명 기간이 거의 없었다. 운이 좋은 편인데

A. 그렇다. 데뷔하자마자 히트작이 나온 경우다. 만화를 좋아했고, 꾸준히 그렸다. 꾸준히 하다 보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Q. 꾸준히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 않나

A. 나는 운을 좀 믿는 편이다. (미리 포기하고) 안 하는 것보단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시도해봐야 한다. 생활고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한테 계속하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너 재능없어 보인다, 포기해”라고 말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Q. 가장 인기 많았던 때가 2000년 전후반이다. 그 사이 만화판이 많이 달라졌다. 종이에서 웹으로 넘어왔고, 만화를 보는 독자들의 습관도 달라졌다. 적응이 어렵진 않았나

A. 아직 웹툰에 대해 완전히 감을 잡진 못한 것 같다. 연출방식이나 스토리, 진행 속도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아직 웹툰에 적응 중이라는 느낌이 든다.

Q. 트렌드가 많이 달라졌나

A. 트렌드는 그때그때 바뀐다. 그걸 캐치하느냐 못하느냐는 나이랑은 상관없다. 눈치나 성향의 문제다. 내 경우엔, 작업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다. 나는 아직도 종이 만화책 때처럼 한 페이지 여러 컷이 들어가도록 구성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요즘 웹툰 같은 경우엔 처음부터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스크롤 방식으로 연출한다. 나는 아직 그런 방식에 도전을 안 해봤다.

Q. 웹툰에 익숙한 10대한테는 신 작가의 연출 방식이 보기에 어색할 수 있겠다

A. 그런 것 같다. 정확하게 누가 과학적으로 그걸 증명한 걸 보진 못했지만(웃음). 웹툰은 화면 사이즈에 맞게 컷들이 다 큼직큼직하다. 웹툰 방식이 가독성은 더 좋아 보인다.

Q. 그래서 그런가. 주요 독자층이 30대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포털에서도 30대 이상을 타깃으로 신 작가의 만화를 연재하려는 것 같고.

A. (포털에서)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내 만화를 많이 보는 사람이 30~40대 남성인 것 같긴 하다.

Q. ‘세이브왕’이 되겠다고 했다(세이브 원고는, 연재 전에 미리 완성해 놓은 원고를 말한다). 웹툰은 매주 마감을 맞추는 게 필수인데 압박감은 없나

A. 세이브 원고를 벌써 두 개 써먹었다(웃음). 어떻게 보면, 마감은 종이 잡지 시절이 더 빠듯했다. 그때는 마감이 안 되면 맡은 분량만큼 공란이 생겨버리니까. 마감을 안 하면 잡지 자체가 안 나올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감에 더 충실한 분위기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마감은 중요하다.

Q. 마감 못 지키면 악플이 달리지 않나. 바로바로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는다는 기분은 어떤가

A. 좋은 댓글이 백 개 있어도, 나쁜 게 하나 있으면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긴 입는다. 그냥, 내가 싫어 욕한다는 건 오히려 신경을 덜 쓰게 되는데 원고 설정이나 스토리를 콕 집어 지적하면, 그게 제일 와 닿는다. 선플로 써도 가슴 쓰리지만 “이러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악플일 땐 더 하지. 변명 거리도 없고.

Q. 술을 잘 마시는데, 일주일에 며칠이나 술을 마시나

A. 요즘은 7일이다. 화실 식구들이랑도 먹고, 나 혼자도 먹는다. 원래 좋아하기도 하고, 신작 들어가서 약간 두근거림도 있고 해서 자주 마시는 편이다. 기대도 있고 실망도 있고 그러니까, 일 마치고 저녁때 좀 먹는 거다. 맘 편해지려고.

Q. 신작 얘기가 나왔으니까, <도망자>는 어떤 만화인가

A. 관계가 애매한 –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사람과, 그 누군가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람- 세 명이 기억을 잃고 섬의 노예로 끌려가서, 결국엔 그 섬을 해방시키는 에피소드다.

Q. 개그 만화를 그린다. 소위 ‘남자 취향’인 데다 현대판 무협지 같은 느낌도 있고. 주로 이런 만화를 그리는 이유가 있나

A. 일단 내가 재밌어야 해서 그러는 거다. 지금까지는 장르를 확 바꾸진 않아 왔다. 자기 복제라고 할 수도 있는데, 분위기나 진행은 비슷하더라도 작품마다 캐릭터나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면 느낌도 달라질 수 있다. 일단은 내가 이런 게 재밌어서 자꾸 그린다. 10~20대 여성도 좋아할 만화를 그려야 하는데(웃음).

Q. 독자층을 넓히려면 통렬한 자아비판이 필요한 것 아닌가

A. 내가 갑자기 장르파괴를 하면 매체에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나’라는 사람한테 기대하는 수준의 작품 스타일이란 게 있을 텐데. 내가 “난 꼭 이런 게 하고 싶다”고 고집부리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스타일을 매체에서도 원할 것 같다.

Q. 웹툰을 통해서 돈을 버는 작가들도 꽤 나온다. 신 작가도 ‘미리 보기’ 결제 수익이 꽤 될 것 같다

A. 미리 보기가 자리를 잡아서 만화가 완전 무료에서 반 유료화가 됐다. 문화적으로 만화 시장 전체가 좋아진 거다. 나로서도 괜찮고.

Q. 콘텐츠 유료화는 창작자에 꽤 중요한 이슈다

A. 네이버 초기에 잡지 만화하던 작가들은 웹툰이 ‘공짜 만화’를 양성한다고 안 좋게 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웹툰이 만화 시장 파이를 키워놨다. 거기에 유료 모델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좋아졌고, 그때 빨리 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게 실수였단 생각도 든다. 뒤처진 느낌이 있다.

Q. 밥벌이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작가 고료가 사실상 2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A. 신인 작가 기준으로, 웹툰 고료가 20년 전 종이 잡지 시절 고료에 비해 크게 올랐다고 보긴 어렵다. 플랫폼도 어느 정도 수지가 맞아야 하니까 무조건 올려달라고 할 수만 없지만, 천천히 계속 올려 나가는 작업은 필요하다.

Q. 한동안 학습만화를 작가들의 마지막 보루로 여겼는데

A. 한동안 모든 작가가 학습만화로 빠졌는데 웹툰 시장이 살아나면서 이리로 많이 옮겨왔다. 여기에 출판계가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학습만화가 무너지기도 했고. 이렇게 바뀔진 아무도 몰랐다. 웹툰 작가 중, 그림은 꽤 그리는데 이름은 모르겠단 사람 중 학습만화를 오래했던 기성 작가가 꽤 있다.

배철완 작가(왼쪽)와 신영우 작가
배철완 작가(왼쪽)와 신영우 작가

Q. 웹툰 작가 중 성공한 케이스엔 신인이 많다(인터뷰에 신 작가의 동료가 함께 했는데, 네이버 웹툰 <썸남>으로 인기를 얻은 배철완 작가다. 배 작가는 신영우 작가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할 때 가르친 제자기도 하다. 2014년 네이버 대학만화최강자전에서 1등을 했다). 어떻게 보면 세대가 달라졌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시쳇말로 ‘요즘 만화가’들을 보면 어떤가

A. 작가가 많아졌다. 그러니까, 그건 세대의 문제라기보다 사람의 문제다. 작가 수가 늘어나니까 이런저런 사람이 생기는 거고. 예전 문하생 문화를 말하는 거라면, 조금 더 동등해진 관계인 것은 맞다. 지금은 선후배로 부르기보다 서로 ‘작가님’이란 호칭을 쓰기도 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이 더 낫다. 친해져서 말 놓고 까불고 이런 게 좋다.

Q. 신 작가의 만화는, 주제도 그렇고 국외 진출도 가능하지 않을까

A. 플랫폼에서 해외 진출을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내가 맞는다면 할 수도 있겠지. 내가 하고자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꼭 해외 진출해야 한다는 아니지만, 이왕이면 바깥에서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만화의 보편성도 생각하게 된다. 시대가 바뀌고 언어가 달라져도 읽힐 수 있는 보편적인 만화 말이다.

Q. 신 작가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키드갱>이다. <키드갱>은 대박 아니었나. 후속작이었던 <서울협객전>엔 어떤 점수를 주겠나. 신작인 <도망자>엔 어느 정도 기대하는지도 궁금하다

A. <키드갱>은 시대를 잘못 탄 대박이지(키드갱으로 신 작가는 인지도를 얻었지만 큰 돈을 벌진 못했다). <서울협객전>은 중박 정도로 보고, <도망자>는 신작이라 큰 기대를 했는데, 지금은 그냥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Q. 지금까지 가장 아끼는 캐릭터는 누구인가

A. 한 명 고르긴 애매하다. 그래도 강대봉이 좋다.

강대봉은 만화 <키드갱>의 주인공이다. 깡패지만 불의를 보고 못 참는 데다, 심지어 원수의 아이가 부모를 잃자 맡아 키울 정도로 심성이 곱다. 과거를 숨기고 사는데, 보면 알겠지만, 주먹은 우주 최강이다.

Q. 강대봉을 살려달라

A.  강대봉이 다시 나오면 사기 캐릭터가 된다.

사기 캐릭터라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는 최강의 캐릭터를 말한다.

Q.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만화는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만화를 그리고 싶나

A. 내가 생각하는 좋은 만화는 재밌는 만화다.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야 하거나 우울해지는 만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비슷한 만화를 할 거 같다. 큰마음의 변화가 없지 않은 한 앞으로도 해피엔딩을 그리고 싶다. 나쁘게 말하면 폭력, 좋게 말하면 액션 만화를 하지 않을까.

Q. 마지막 질문이다. 왕자병이 있지 않나. 정말 본인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나

A. 왕자병은 없다. 도망자가 잘됐으면 생길 뻔했는데 아니다. 진짜로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냥 뭐랄까, 비난을 듣기 위한 농담이다. 그러면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편하니까. 나는, 즐거운 분위기가 좋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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