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센트가 만드는 기적, 프로덕트 레드

여러분에게 ‘에이즈(AIDS)’는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나요? 제가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인상을 남긴 건 1991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때 수술을 하고 수혈을 받은 경험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수혈을 통한 에이즈 감염이 이슈가 됐습니다. 어린 마음에 몇 달 동안이나 에이즈에 걸리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991년에는 두 스타가 에이즈에 감염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농구선수였던 매직존슨과 최고의 록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HIV, 그리고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됐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이 바이러스성 질병은 그야말로 온 세상을 공포로 만들었습니다. 부도덕한 세상에 ‘신이 내린 벌’이라는 이야기까지 따라 붙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에이즈, 그리고 HIV라는 말 자체가 주는 공포가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 두려움이나 공포, 그리고 ‘걸리면 죽는다’는 이미지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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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센트가 만들어내는 기적 ‘레드’

이맘 때면 돌아오는 색깔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레드’입니다. 아마 ‘프로덕트 레드’라고 하면 “아~”라는 반응이 나올 겁니다. 네. 매년 12월1일은 ‘에이즈의 날’입니다. 저는 지금 뉴욕에 와 있습니다. 애플과 레드가 자그마하게 연 행사에 초대 받아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올해 또 다시 어떻게 에이즈의 날을 준비할 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올해로 레드와 애플의 협업이 10년을 맞았습니다. 애초 U2의 보노와 애플이 새빨간 아이팟 나노를 내놓으면서 제품 판매액의 일부를 에이즈 치료 기금으로 기부한다는 의도로 시작돼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나이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갭, 컨버스를 비롯해 수많은 기업들이 프로덕트 레드의 로고를 내세워 다양한 방법으로 기금을 모으는 사업으로 번졌습니다. 빨간색 제품을 보면 ‘프로덕트 레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이 캠페인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애플의 환경 담당 수석 부사장인 리사 잭슨(Lisa Jacson)과 레드의 크리시 필라리시스(Chrysi Philalithes)의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그저 애플이 매년 빨간색 제품을 내놓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기부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10년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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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잭슨은 프로덕트 레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몇 번이고 이 이야기를 들으러 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기자들의 글이 독자들에게 에이즈가 치료되는 환경과 30센트의 마술에 대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애플의 행사를 몇 번이고 들어봤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낯선 일입니다. 그가 어떤 의미로 꺼낸 이야기인지는 언어를 떠나 마음으로 어렵지 않게 전해졌습니다.

30센트의 마술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겠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사 잭슨의 이야기는 조금 놀라웠습니다. 에이즈 환자들이 이 병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돈이 하루에 단 돈 30센트, 우리 돈으로 4백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프로덕트 레드는 단순히 환자들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매일 30센트짜리 약을 통해 병을 치료해가고 있습니다.

치료 눈 앞, “할 수 있는 일이다”

“2006년 U2의 보노와 DATA(Debt, AIDS, Trade in Africa)의 바비 쉬라이버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들의 의도는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은 지난 10년 동안 열정을 갖고 그 일을 고객들과 함께 해 왔습니다.”

리사 잭슨의 이야기입니다. 레드는 단순히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의 생계를 돕는 자선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태어났느냐가 병에 대한 대응과 삶을 결정하는 건 끔찍한 일입니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에이즈 관련 약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나라에서 지원도 해줍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에이즈와 HIV에 감염된 채 태어난 아이들은 과연 무슨 죄일까요. 그 차이를 극복하는 데 드는 돈이 하루에 30센트라는 이야기가 놀랍지 않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세상이 노력한 결과는 꽤 충격적입니다. 에이즈 퇴치가 눈 앞에 와 있다면 믿어지시나요? 몇 년 전만 해도 에이즈는 극복조차 어렵다고 여겼지만 이제 몇 년 안에 이 병을 세상에서 없앨 수 있다고 합니다. 레드는 그게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4년 뒤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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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시는 한 예를 보여주었습니다. 에이즈를 갖고 태어난 지 11개월된 한 아이 생사를 논하고 있을 때 프로덕트 레드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는데 불과 3개월만에 사진만으로도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건강한 몸을 갖게 됐고, 지금은 5살인데 여느 아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아이의 엄마가 곧 둘째를 갖게 됐는데 약을 먹고 치료를 하면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고맙게도 에이즈나 HIV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게 30센트의 힘입니다”라고 말하는 크리시의 말이 머리에 꽂히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애플이 아이팟 터치, 아이팟 나노, 아이팟 셔플을 비롯해 제품 케이스, 애플워치 밴드 등을 내놓으면서 지난 10년 동안 모금한 돈이 1억 2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30센트짜리 약 ‘4억 일’ 분의 약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레드가 모은 전체 모금액은 3억6천만 달러입니다. 12억일 분의 약을 살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이긴 하지만 이 재단을 통해서 모금되는 돈은 100% 기부되고, 에이즈 퇴치에 쓰이기 때문에 숫자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크리시는 이번주에 발표된 정보를 소개해주었습니다. 현재 1820만 명이 에이즈 치료 약을 먹고 있고, 에이즈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2000년에는 약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70만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0년 전에는 HIV를 갖고 태어나는 아기가 매년 20만 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4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아직도 줄어야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2020년이면 에이즈를 뿌리뽑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그리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매 2분30초마다 한 명 꼴로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글 앞머리에서 이야기한 매직 존슨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병에 걸린 지 25년이 지났는데, 이 정도면 에이즈가 죽을 병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불편함이라는 이야기도 틀리지 않은 듯 합니다. 매직 존슨을 비롯해 프로덕트 레드까지, 에이즈는 그저 쉬쉬할 몹쓸 병이 아니라 극복하고, 그 두려움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말자는 노력이 만들고 있는 기적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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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프로덕트 레드는 이어집니다. 애플은 아이폰SE의 가죽 케이스, 그리고 아이폰7의 스마트 배터리 케이스, 비츠 헤드폰과 블루투스 스피커, 그리고 이전의 아이팟 제품들을 판매합니다. 애플은 단순히 제품만이 아니라 이를 서비스 생태계에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애플 페이를 통해 결제되면, 매 건마다 1달러씩 총 100만 달러가 기부됩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도 마찬가지로 애플페이를 통해 결제될 때마다 1달러씩 100만 달러를 기부합니다.

아이튠즈에는 ‘나사로 효과(Lazarus effect)’라는 비디오가 등록되고, 음악 스토어에도 록밴드 킬러스(killers)의 음반이 등록됩니다. 이 콘텐츠와 관련된 수익은 당연히 100% 기부됩니다.

애플은 지난 2014년, 아이튠즈 앱스토어를 통해 앱 기반의 기부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바 있습니다. 앱스토어에서 인기 있는 앱들이 프로덕트 레드 버전의 앱을 준비하고 앱 안에서 판매되는 콘텐츠나 아이템들을 통해 크게, 혹은 작게 모금을 하는 것입니다. 11월30일부터 앱스토어는 또 다시 빨간 물결로 물들게 됩니다.

“이 차량 아이템을 팔면 65일치 약을 살 수 있습니다”

앱 개발사들을 만날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앱 개발사들을 만날 기회는 종종 있었지만 새로 나온 기술이나 무거운 제품 이야기 대신 게임의 특징을 잘 살려서 프로덕트 레드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대체로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였습니다.

그 중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즐기는 게임 ‘CSR레이싱2’의 내추럴모션도 있었습니다. CSR레이싱2에는 빨간색의 부가티 시론(Chiron)이 프로덕트 레드로 판매됩니다. 내추얼 크리스 보울스(Chris Bowle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260만 달러(한화 약 30억원)짜리 차를 단돈 19.99달러에 살 수 있다”고 농담섞인 말을 꺼내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돈으로 65일치의 약을 살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웃어 넘길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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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량을 위해 부가티 역시 디지털이지만 차량 디자인을 빨간색 분위기에 맞춰 새로 디자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디자인의 캐드 데이터를 선뜻 내추럴모션에 제공했습니다.

앵그리버드를 만든 로비오의 개발팀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빌헬름 타흐트(Wilhelm Taht) 수석부사장은 “앵그리버드의 주인공인 붉은 새의 이름이 뭔지 아느냐”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레드’죠. “공교롭게도 캐릭터 이름이 같아서 더 기분 좋게 에이즈 퇴치에 동참할 수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합니다. 로비오는 2014년에도 앵그리버드로 프로덕트 레드 앱을 내놓았던 바 있지요.

로비오는 앵그리버드2의 캐릭터에 붉은 가면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레드 패키지로 게임에 필요한 보석과 깃털을 더 파격적인 조건에 판매합니다. 이 아이템팩은 0.99달러고, 판매액 역시 100% 기부됩니다. 버블슈팅 게임인 ‘앵그리버드 팝’도 참여합니다. 이 역시 골드와 생명, 그리고 버블을 크게 터뜨려주는 파이어볼을 묶어 1.99달러에 판매합니다.

눈에 띄는 건 직접 돈을 기부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플레이어가 힘을 모아서 게임 속 적인 ‘붉은 돼지’를 퇴치하는 캠페인을 벌인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 이용자가 힘을 모아서 붉은 돼지 5천만 마리를 퇴치하면 참여자 모두에게 특별한 아이템을 제공합니다. 왜 이런 이벤트를 하냐고 물으니, “전 세계의 이용자들이 힘을 모아 에이즈 퇴치에 힘 쓰고 있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올해는 특히 이처럼 힘을 합친다는 메시지를 주는 캠페인이 눈에 띕니다. 주사위 게임인 ‘야찌’ 역시 게임을 돕는 별도의 아이템들을 판매해서 기부금에 보태지만 다른 한편으로 혼자 즐기는 모드에 대전 프로그램을 붙였는데 상대방을 물리쳐 나가면서 누구나 에이즈를 퇴치하는데 힘을 보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더했습니다. 누구 한 명의 노력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크든, 작든 함께 풀어갈 문제라는 겁니다. 캐릭터들의 이름을 ‘Inc(red)able’, ‘Docto(red)’ 처럼 레드를 붙인 센스는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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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주제인데 당연히 EA도 빠질 수 없습니다. EA는 피파 모바일과 심시티 빌드잇, 그리고 식물과 좀비를 프로덕트 레드로 준비했습니다. 당연히 게임 내 아이템들을 유료로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레드에 기부합니다. 각 아이템들은 단순히 기부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게임의 재미도 살리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기존에 15달러에 팔던 것들을 4.99달러에 판매하기도 하고, 심시티 빌드잇의 경우 아이템 외에 프로덕트 레드 아이템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게임에 새로 더해질 건축물에 대한 설문도 함께 받으면서 커뮤니티에 대한 재미를 더하기도 합니다.

앱스토어에 더해질 프로덕트 레드 게임은 이 외에도 매우 많습니다. 붐비치, 캔디 크러시 젤리 사가, 클래시 로얄, 팜 빌, 헤이데이, 마벨 콘테스트 등 인기 있는 게임들이 참여해서 게임 속을 붉은 색으로 채우고, 각종 메시지와 기부 프로그램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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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아이템을 팔고 그 수익금을 기부하는 아주 일반적인 기부 프로그램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게임 포 레드(Games for (RED))’ 캠페인은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무형의 소프트웨어로 이용자들에게 가치를 주면서, 뜻 깊은 메시지도 전달하고 기부금도 모으는 것으로 생태계가 긍정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모두 밝은 얼굴로 “우리 게임과 캐릭터들이, 그리고 우리 이용자들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입을 모으는 것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게임들이 나서서 에이즈라는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 기부금을 통해 약으로 치료되고, 동시에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도 치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0센트, 4백원이 만들어내는 기적에 더 즐겁게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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