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노트7, 성급한 판매 재개가 화 불렀다

10월 10일 삼성전자가 결국 갤럭시 노트7의 생산을 임시 중단했습니다. 판매를 중단하는 게 아니라 생산을 멈춘 겁니다. 1차 판매 중단과 교환에 이어 이번에는 만들고 공급하는 것 자체를 조정하는 겁니다. 표현이 애매하긴 하지만 사실상 다시 판매를 멈추는 과정인 셈입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10월 11일 삼성전자는 아예 갤럭시 노트7의 판매까지 중단했습니다.

리튬 이온이나 리튬 폴리머 기반의 배터리는 어떤 것이든 불이 쉽게 붙습니다. 리튬 자체가 아주 불안정한 상태의 물질인 데다가 어떤 식이든 충격이 가해지면 급격히 산소와 반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품이든 배터리 발화 사고는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갤럭시 노트7도 처음에는 여느 제품들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빈도가 꽤 높다 싶더니 결국 일정 기간이 지나자마자 부쩍 눈에 띄게 우후죽순처럼 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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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발화는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예민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삼성전자도 애초 대응은 서둘렀습니다. 물론 그게 국내보다 해외에서 이슈가 되자 움직인 것 같은 분위기는 어쩔 수 없지만 판매를 잠정 중단하고 제품을 모두 교체해주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리콜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도 나오긴 하지만 일단 안전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먼저 대응한 것은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다만 지금 돌아보면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는 겁니다. 삼성전자는 간담회를 열고 ‘배터리 문제’로 못을 박았습니다. 설계나 소프트웨어 등 다른 문제는 일축했습니다. 삼성SDI가 이 사태의 거의 모든 책임을 지는 것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급하게 9월19일이라는 날짜를 정합니다. 배터리만 교체하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품을 교체하고, 판매가 재개된 지 2주일쯤 지나자 또 다시 문제가 불거집니다. 신제품 출시 이후의 패턴과 비슷합니다. 삼성은 새 제품에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지만 그 사이에 충전시 과열된다는 이야기처럼 이전에 나오던 문제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월 들어 발화 사고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국내에서 한 이용자가 이를 보고하자 삼성은 순식간에 ‘외부 충격’으로 결론 내고 다시 배터리 이슈에 불이 붙는 것을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미국과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또 다시 예의 그 연쇄 발화 사건이 이어집니다. 급기야 미국 이동통신사인 AT&T와 T모바일이 갤럭시 노트7을 더 이상 팔지 않고, 교체에 대한 부분도 관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두 번 반복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사실 통신사는 통신을 서비스하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제품을 대신 팔아주는 유통의 입장도 갖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통신사를 통해서 제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통신사로서는 이후에 법적 문제가 생기거나 집단 소송, 징벌적 손해 배상 같은 식으로 일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 선을 긋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통신사들도 결국 판매 중단의 이유는 ‘안전(Safety)’으로 설명합니다. 뭐라고 변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해외 언론들도 들썩였습니다. 참을만큼 참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불안한 제품을 파느냐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특별한 대응이 없었습니다. 다시 일어난 사고에 대한 압박은 이전의 그것과는 질이 다릅니다. 다시 판매를 중단하면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일단 생산을 조절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 가장 답답한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삼성전자 스스로도 명확한 원인을 파악했다면 개선된 제품을 공급했거나 이미 지난 판매 중지 기간에라도 조용히 문제를 해결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정말 배터리만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성급한 판매 재개’가 아쉽다는 겁니다. 물론 뜨거운 반응이 가라앉기 전에 하루 한 시가 급했던 때이긴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고, 다른 제품보다도 더 안정성에 대한 확신을 가진 뒤에 판매를 다시 시작했어야 합니다. 여전히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더 이상 ‘배터리 자체의 문제’라는 말은 시장에서 통하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미국에서 일어난 사고 중 하나는 ‘신제품인 블랙 오닉스 색이었고, 비행기 안에서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 불이 붙었다’는 설명이 따라 붙었습니다.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충전의 문제나 배터리 자체의 문제만으로 대중에게 설명하기는 더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이미 메인보드 설계나 프로세서, 혹은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배터리 발화는 원인이 아니라 다른 원인에 대한 결과물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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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일(현지시간) 미 뉴욕서 진해된 갤럭시 언팩 행사장의 체험 공간을 가득 메운 글로벌 미디어와 파트너의 모습. – 삼성전자, 포커스뉴스 제공
여기저기서 갤럭시 노트7의 개발 시간이 촉박하고, 서둘러 개발했다는 이야기가 들려 옵니다. 삼성의 숨막히는 개발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지만 그래도 그 결과물들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흥분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출시 이후에, 그리고 대대적인 리콜 이후에는 문제를 잡고 해결할 수 있었어야 합니다. 서둘러서 판매를 다시 이어가는 게 우선 과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에서 맨 뒤의 ‘7’을 흔드는 데에서 시작했지만 이내 ‘노트’ 시리즈까지 흔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잡아내지 못한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진은 ‘갤럭시’ 브랜드와 ‘삼성전자’까지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제품이든 크고 작은 문제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의 실수나 문제 그 자체로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진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대응방법입니다. 그에 따라 더 단단한 지지층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1차 리콜 당시의 여론이 이를 설명해줄 겁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여러 모로 더 아쉽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호섭> hs.choi@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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